“박항서 감독이 사라졌다.”
베트남 축구전문지 봉다는 15일 오후9시30분(한국시각) 베트남 하노이의 미딘국립경기장에서 열릴 말레이시아와의 2018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결승 2차전을 앞두고 박항서(59) 베트남 대표팀 감독이 두문불출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박 감독은 지난 13일 팀 훈련을 이영진 수석코치에게 맡기고 숙소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는 혼자서 경기 영상 자료를 끊임없이 돌려보며 상황별 대응책을 마련하는 데 골몰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남아 축구 최강을 가리는 스즈키컵에서 10년 만의 우승 기회를 잡은 베트남은 11일 결승 1차전 원정에서 2골을 먼저 넣고도 2대2로 비겼다.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2차전 홈에서 0대0이나 1대1로 비겨도 우승하는 유리한 상황이지만 승리를 챙기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없을 리 없다. 실제로 귀국장에서 선수들의 얼굴은 굳어 있었는데 박 감독은 그런 선수들의 기를 북돋우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박 감독은 1차전 뒤 숙소로 돌아가 선수들과 다 같이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한 명 한 명에게 일일이 동기부여를 위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경기장 안팎에서 선수들을 껴안거나 얼굴을 쓰다듬으며 용기를 불어넣는 것은 물론이고 비행기 비즈니스석을 양보하거나 발마사지를 직접 해주는 등의 ‘파파 리더십’은 이미 잘 알려진 얘기다. 박 감독은 1차전에서 두 번 정도 골 기회를 놓친 스트라이커 하득찐을 보듬는 데 각별하게 신경 쓰고 있다고 한다. 박 감독은 “우리 대표팀은 대부분 어린 선수들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혼신을 다하고 있고 운이 조금 안 따라줘 승리를 챙기지 못했을 뿐”이라며 “누구도 비난할 이유가 없으며 2차전에는 더 잘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했다.
베트남이 지난해 10월 박 감독을 영입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스즈키컵에서 성적을 내는 것이다. 올 1월 23세 이하 아시아 챔피언십 준우승, 8월 아시안게임 4강을 통해 이미 영웅으로 추앙받는 박 감독은 부임 후 첫 우승에 바짝 다가서 있다. 1차전에서 팀 내 최다 득점자(3골) 응우옌아인득, 핵심 미드필더 르엉쑤언쯔엉 등을 아예 내보내지 않는 과감한 용병술을 선보였던 박 감독은 이번에는 총력전으로 베트남 축구의 진수를 선보인다는 각오다.
14일 공식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낸 박 감독은 “1년간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아직 우승이 없다. 꼭 우승하고 싶고 선수들도 끝까지 싸울 것”이라며 “베트남 국민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드려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한국에서의 관심도 정말 감사하고 축구 지도자로서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 고맙다”고 했다.
1차전에서 8만여 말레이시아 관중의 일방적 응원을 이겨내야 했던 베트남은 이번에는 4만 홈 관중을 등에 업고 싸운다. 현장 판매분은 1시간 만에 매진됐고 우리나라에서는 지상파(SBS) 중계까지 잡혔다. 박 감독의 경기 중 반응만 따로 잡는 ‘박항서 캠(cam)’까지 준비했다고 한다.
박 감독이 부임한 후 5승4무로 A매치 무패 행진 중인 베트남은 이 기간 3승1무의 안방 불패도 이어가고 있다. 이번 결승 2차전도 이기거나 비길 경우 베트남은 박 감독 부임 이전 기록을 더해 A매치 16경기 무패 세계신기록도 작성한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챔피언 프랑스는 지난달 네이션스리그에서 네덜란드에 지면서 무패 기록이 15경기에서 중단됐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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