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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사고 5일만에 이메일로 사과한 서부발전

경제부 강광우 기자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의 하청업체 직원 고(故) 김용균씨는 대통령을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갓 입사한 24살 청년은 탄가루에 찌든 안전모와 마스크를 착용하고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안전한 작업 환경에서 정규직으로 일하고 싶었던 그의 꿈은 불과 두 달 뒤 산산조각이 났다. 그는 지난 11일 새벽 혼자 태안화력발전소 9·10호기 트랜스포머 타워 040C구역 석탄이송 컨베이어벨트를 혼자서 점검하다가 기계에 끼여 숨진 채 발견됐다.

소중한 생명이 사그라들기 전까지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책임자는 없었다. 김병숙 서부발전 사장은 사고가 발생하고 나서야 11일 밤과 그 다음날인 12일 오후, 15일 저녁까지 총 세 차례 고인의 빈소를 찾았다. 유가족들이 거부해 장례식장 앞에서 매번 쫓겨났다.

너무 늦게 온 탓이다. 김씨는 낮과 밤이 수시로 뒤바뀌며 하루 11~13시간을 어둠 속에서 혼자 일했다. 원청인 서부발전에서 언제 낙탄을 치우라고 지시할지 몰라 매번 컵라면으로 배를 채웠다. 최소한의 안전만이라도 보장받고 싶어 문을 두드릴 때는 아무도 찾아주지 않더니 숨이 끊어지고 나서야 이야기를 듣겠다며 고개를 내밀었다.



사고 직후 대처는 거의 ‘은폐’수준이었다. 사고가 나자 관계자들은 직원들의 입단속을 하기 바빴다. 김씨의 동료들은 ‘언론 등 외부에서 사고 내용을 물어보면 일절 응답하지 말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했다. 사고 후 대책 회의를 한다고 시신을 한 시간째 방치하고, 시신을 옮긴 뒤에도 발전기를 다시 돌리기도 했다. 서부발전이 하청업체 직원들의 인명사고 발생 건수를 축소 보고한 정황도 드러났다.

“유가족 사과가 먼저”라던 서부발전은 정치권과 여론의 동향이 악화되자 사고 발생 닷새 만인 16일 밤 기자들에게 이메일을 통해 기습적으로 사과문을 보냈다. “민주노총의 반대로 유가족을 만나지 못했다”는 핑계를 대며 최종 책임자인 김병숙 사장은 A4용지 한 장짜리 보도자료로 사과를 갈음했다. 그나마 구체적인 반성은 담기지 않았다.

아마 김 씨가 진정으로 만나고 싶었던 건 대통령도 김병숙 사장도 아니었을 것이다. 인간다운 대접을 받으며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는 본인의 모습이었을 게다. 서부발전이 김 씨의 망가져 버린 희망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봤다면 한밤중 기습 이메일 사과보다는 다른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그게 민간기업이 아닌 책임있는 공공기관의 자세다. /press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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