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생산설비를 점거한 채 벌이는 것은 불법 노동쟁의에 해당하므로 가동이 중단된 시간에 비례해 지출한 고정비 등을 따져 손해배상금을 산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앞서 나왔던 기존 판례와 같은 입장으로 막무가내식 파업에 재차 경종을 울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또 협력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설립한 지회는 회사에 대해 단체교섭과 쟁의행위를 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니라는 점도 확인됐다.
지난 2010년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내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들은 ‘전국금속노동조합 충남지부 현대차(005380)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라는 이름의 노동조합을 결성해 임금 인상과 정규직 전환 등을 요구하는 단체교섭을 지속적으로 요청했다. 현대자동차 측은 사내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는 자사와 근로계약관계에 있지 않아 단체교섭의 당사자로 인정할 수 없다며 교섭요청을 거절했다.
사내하청노조는 이에 반발하며 같은 해 12월9일 작업을 거부하거나 작업장을 일시 점거하는 방식의 쟁의행위를 벌였다. 공장 2층 섀시 생산라인에 진입해 근무하던 노동자들을 밖으로 나가게 하고 미리 준비한 쇠사슬로 자동차를 이동시키는 설비를 묶어 55분간 가동을 중단시켰다. 현대차 측 관리직원들이 이를 저지하려고 하자 사내하청노조원 일부는 플라스틱 재질의 상자와 쇠파이프를 휘두르거나 볼트 등 자재를 집어던지면서 대치했다. 현대차 측은 부당한 쟁의행위로 인해 손해를 입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1심은 현대차 측의 주장대로 제품을 생산하지 못해 발생한 매출손해와 고정비 지출, 치료비에 대한 하청노조의 배상 의무를 인정했다. 다만 손해배상책임은 50%로 제한했다. 또 하청노조원 중 일부가 파견근로자로서의 지위를 확인받았다고 해도 해당 지회가 회사에 대한 단체교섭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봤다. 반면 2심은 쟁의행위의 불법성을 인정하면서도 점거시위로 인해 저하된 자동차의 생산량을 특정할 수 없고 생산 저하가 곧바로 판매수입 저하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며 치료비 절반만 배상금으로 인정했다.
대법원은 2심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봤다. 대법원은 “55분간의 쟁의행위로 인해 자동차가 생산되지 못한 부분이 있는지 심리하고 그 시간 동안에 대한 고정비 지출 손해를 따져봐야 한다”며 파기환송했다. 대형로펌 노동 전문 변호사는 “노조의 생산설비 점거 등의 시위가 불법이라는 점은 기존과 같으나 사측에 지급할 손해배상액을 산정할 때 구체적으로 생산량 저하를 일으킨 부분을 특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라며 “사내하청노조 소속 노동자 중 일부가 법원 판결을 통해 파견근로자로서의 지위를 확인받았다고 하더라도 모든 조합원에게 판결의 효력이 그대로 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확인된 셈”이라고 말했다. /백주연기자 nice8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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