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펜션에서 수능을 마친 고3 학생들이 참변을 당한 사고를 계기로 가스중독자 응급치료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산화탄소(CO) 등 각종 가스중독 환자의 치료를 위해 고압 산소 치료 설비가 필수적이지만 이를 갖추지 못한 광역 지방자치단체가 3곳이나 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 의료법에 이 설비를 응급기관에 갖추도록 강제하는 조항이 없는 상황에서 병원은 비용에 비해 수익이 나지 않아 도입을 꺼리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화학공단 몰린 울산에도 ‘고압 체임버’ 없어=19일 서울경제신문이 국립중앙의료원 등으로부터 입수한 ‘고압 산소 치료 설비(고압 체임버) 보유 현황’에 따르면 고압 체임버를 보유한 의료 기관은 총 27곳이었으며 울산광역시·세종특별자치시·전라북도에는 한 곳도 없었다. 이를 보유한 의료 기관의 규모도 중구난방이었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은 응급 의료 기관의 규모에 따라 환자를 단계적으로 치료할 수 있도록 권역응급의료센터·지역응급의료센터·지역응급의료기관으로 나누고 있다. 고압 체임버 현황에서 가장 규모가 큰 권역응급의료센터가 14곳으로 전국의 권역응급의료센터가 36곳에 달하는 점을 미뤄볼 때 턱없이 적었다. 기관 외 등급을 받은 곳도 5개 의료 기관에 달했다.
병원별 고압 체임버도 천차만별이었다. 15곳은 전부 1인용 체임버만 갖추고 있었으며 심지어 서울 지역의 한 병원에서는 이조차도 고장이었다. 다행히 학생들이 이송된 강릉아산병원과 원주세브란스병원에는 다인용 고압 체임버가 마련돼 있었다. 결국 다른 지역에서 같은 사고가 발생했다면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던 셈이다.
◇고압 체임버 강제 조항 없어…“시설 찾아 삼만리”=고압 체임버 시설은 CO 중독 등 호흡계 질환자의 응급 처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장비다. CO 중독자는 이미 적혈구에 CO가 결합해 있어 대기압과 같은 압으로 산소를 공급한다 하더라도 혈중 산소 농도를 올리기가 어렵다. 고압 산소 치료는 환자를 1시간 30분 정도 특수 탱크에 눕혀 놓고 100% 농도의 산소를 일반 공기압보다 2~5배 높은 고압으로 들이마시게 하는 치료다. 특히 최근 번개탄이나 연탄가스를 사용한 자살 시도나 작업장 가스중독사고 등이 잇따르고 있어 중요도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르면 권역응급의료센터에도 고압 체임버 시설을 두도록 강제하는 조항은 없다. 전국에 36곳밖에 없는 권역응급의료센터는 중증 응급 환자를 위해 운영하는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관련 제도가 없는 것이다.
법의 사각지대에서 민간 병원들은 수익이 나지 않아 고압 체임버 도입을 꺼리고 있다. 고압 체임버의 가격은 1억5,000만원 정도인데다 고압가스 관리기사를 별도로 둬야 하고 의사 1명이 치료가 진행되는 약 2시간 동안 현장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도 수가는 1회에 3만원에 불과한데다가 연탄 사용이 줄면서 수요도 줄고 있다. 일선의 한 구급대원은 “기껏 질식 환자를 치료하러 병원에 도착했더니 장비가 작동하지 않는다며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안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토로했다. 정상길 서영대 응급구조학과 교수는 “결국 예산과 인력의 문제”라며 “세월호 사건 때도 민간구조사가 숨진 것은 목포에 권역응급의료센터가 있었어도 고압 체임버 시설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법제 정비가 당연히 검토되고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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