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방송되는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12월의 선물, 뜨거운 위로’ 편으로 뜨거운 위로가 되는 12월의 선물 같은 밥상을 만난다.
▲ 세파에 지친 아들을 위로한 어머니의 곰탕 한 그릇
경남 의령, ‘황새골’이라 불리는 산골짜기에는 귀농 후 10년째 장작불에 무쇠 가마솥을 걸어 곰탕을 끓이는 성삼섭 씨(61)가 있다. 어릴 적, 종갓집인 삼섭 씨네는 손님들로 북적였고,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곰탕을 한 솥 끓여 손님들에게 대접하고, 자식들에게도 먹였다. 어머니는 여러 번의 핏물 빼는 과정을 거친 후, 수시로 불을 보며 총 3번의 국물을 우려냈다.
처음 우려낸 뽀얀 국물과 점점 진해지는 두 번째, 세 번째 국물까지 골고루 섞어내야 비로소 어머니 표 곰탕이 완성됐는데 이를 위해서는 꼬박 이틀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10년 전, 사업에 실패한 아들이 고향으로 왔을 때도 어머니는 이 곰탕을 끓여 아들을 위로했다. 곰탕 한 그릇에 힘입은 삼섭 씨는 어머니의 곰탕 맛을 이어받아 끓이기 시작했다.
어머니께서 자주 해주시던 또 하나의 별미가 있었으니 바로 고구마 조청이다. 으깬 고구마를 엿기름과 12시간 이상을 삭혀주고, 가마솥에 또 졸여내야 하기 때문에 곰탕 못지않은 정성이 필요하다. 2년 전,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지만, 그는 여전히 곰탕을 끓이고 있다. 그는 이제, 귀농한 이웃들과 곰탕을 나눠 먹으며 지난 1년을 되돌아보고 내년을 희망해본다.
▲ 어머니라는 선물이 전해주는 동짓날 온기
장흥에는 자나 깨나 콩 만지는 콩 여인, 허인숙 씨(50)가 있다. 토종 콩을 살리기 위해 채종밭을 운영 중인 그녀는 채종 중인 토종 콩의 종류만 해도 50가지가 넘는다. 또한 토종 남도 장콩으로 메주와 장을 만드는 데에 하루가 바쁠 지경이다. 그런 그녀를 못마땅하게 보는 또 한 명의 여인이 있었으니 바로 그녀의 어머니 최옥자 씨(79)다.
콩에 신경 쓰느라 끼니도 거르는 딸을 보며 옥자 씨는 늘 마음이 아프다. 도시에서 공업 디자인을 하던 딸이 갑자기 시골에 가서 콩 농사를 짓자 어머니는 딸이 걱정돼 장흥에 자주 오셨고, 아예 내려와 함께 살게 되었다. 하지만 알고 보면 모전여전! 음식에 정성 쏟는 건 옥자 씨도 마찬가지다.
인숙 씨는 어릴 적 집에 떡이 끊이질 않았다고 하는데 이는 손수 떡을 만들어주었던 옥자 씨 덕분이었다. 동네에서 큰 손으로 유명한 옥자 씨! 옥자 씨는 동짓날이 다가오자 딸이 농사지은 콩과 팥으로 쇠머리 찰떡과 팥칼국수를 만들려고 한다. 산타 모녀는 딸이 정성 들여 수확한 콩과 팥에 어머니의 손맛까지 더해진 음식을 이웃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직접 배달에 나선다.
▲ 학동리 마을 효자 교전 씨의 흑염소 보양 밥상
열다섯 가구 정도가 사는 전남 보성 학동리 마을에는 마을에서 가장 젊다는 50대 청년 추교전 씨(54)가 산다. 그는 20살에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숱한 고생을 한 후 10년 전, 고향으로 와 흑염소 농장을 시작하면서 어린 시절 목장을 하고 싶었던 꿈을 이뤘다. 교전 씨가 치열하게 살아왔던 타향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에 왔을 때, 그를 안아준 것 역시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염소고기를 넣고 끓여주신 따뜻한 양탕은 시린 그의 마음에 가장 큰 위로가 되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흑염소 농장도 자리를 잡아 교전 씨의 생활은 안정되었지만 어르신들은 이제 몇 분밖에 남지 않아 그의 마음은 안타깝기만 하다. 교전 씨와 아내 이영미 씨(51)는 어머니를 비롯한 부모님 같은 마을 어르신들을 위한 한 상을 차려본다.
3시간 정도 푹 고아낸 육수에 고사리, 토란대 등과 염소 수육을 넣어 끓여낸 보성의 향토음식인 양탕은 다 같이 모인 날에 빠질 수 없는 보양식이다. 염소고기를 얇게 썰어 양념한 후 뭉쳐서 구워낸 염소 떡갈비는 어르신들 입맛에도 딱 맞는 별미다. 제철 맞아 살이 꽉 찬 꼬막도 삶아서 무쳐내면 더 풍성한 밥상이 완성된다. 학동리 마을 효자 교전 씨는 어머니와 동네 어르신들을 모셔 밥상을 대접하며 마음을 전한다.
/김호경기자 khk010@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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