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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텔링]식어가는 연탄, 그 누구보다 뜨거웠던 지난날

100년간 우리에게 온기 전해준 연탄 이야기

한때 TV공모전 1등상 인기…환경오염 지적에 쇠퇴의 길로

하루 1,000만장→20만장 생산…14만가구 여전히 연탄 필요

2020년까지 ‘연탄보조금’ 없앤다…저소득층 난방 부담↑

“지역경제·생계 달려” 석탄산업 지원사업비 年3,000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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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 방송에서 ‘그해의 10대 뉴스 맞추기’ 시청자 공모전을 열었습니다. 공모전에는 수만 명이 응모해 대성공을 거뒀지요. 아니, 상품이 대체 뭐였길래 그토록 열광했을까요? 당시 1등 상품은 다름 아닌 ‘연탄 1,000장’이었습니다. 요즘 1등 상품은 스마트폰이나 IT 기기가 대세인데, 1966년의 사람들에겐 연탄이 스마트폰처럼 꼭 가지고 싶은 ‘잇템’이었던 셈이지요. 지금은 연말 봉사활동 현장이나 고기구이 집에서나 만날 수 있는 존재, 여러분은 저를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연탄’입니다.

지금은 식어가고 있지만, 과거 사람들에게 연탄이란 어떤 존재였을까? / 사진=이미지투데이




지금부터 제 소개를 하도록 하지요. 제 키는 142mm, 3.6kg 몸무게, 얼굴엔 구멍이 22개나 있어요. 이 구멍으로 새빨간 불기둥을 내뿜지요. 점화점이 500℃에 가까워 불이 잘 붙지는 않지만, 한번 불붙으면 오랫동안 강한 화력을 자랑한다고요.

제 고향은 일본이에요. 나무 땔감을 대신해 석탄에 구멍을 뚫어서 사용한 것이 시초입니다. 192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 처음 부산 땅을 밟았지요. 6·25 전쟁 당시 피난민들에게 따뜻한 온기를 나눠주며 조금씩 ‘국민 연료’ 별명을 얻기 시작했어요. 1956년 석탄산업철도가 개통하면서 전국으로 쭉쭉 뻗어 나갔지요. 1957년엔 서울 시민 열에 아홉이 저를 사용했답니다. 냄새가 심하고 연기도 많이 나지만 가격이 저렴해 인기가 진짜 많았거든요. 1977년 한 해 서울 시민이 소비한 연탄만 모두 20억 642만 개에 달했대요.

“연탄을 때면 종일 방이 뜨끈뜨끈하고 빨래하고 나서 옷도 따뜻하게 말릴 수 있지요. 한 200장씩 쌓아두면 부자 같았어. 마음이 든든해. 돈이 없으니까 새끼로 하나둘씩 (엮어) 파는 걸 살 때도 있었지요. 연탄 땔 때가 참 좋았던 거 같아요.” (송진옥, 허정자 / 서울 금천구)

유달리 추웠던 1966년 겨울에는 제 몸값이 한껏 치솟았던 적도 있어요. 그 때문에 빈부격차가 드러나기도 했지요. 여유 있는 사람들이야 싼값에 대량으로 사서 창고에 쌓아두고 사용했지만, 쌓아둘 공간조차 없었던 서민들은 그때그때 한두 개씩 사서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격이 더 비싸도 어쩔 수 없었지요. 그래서 연탄 가격이 뛰면 동사하는 사람들도 덩달아 늘었습니다. 또 낡은 아궁이를 고칠 수 없어 해마다 수만 명이 연탄가스에 중독되고 수백 명씩 사망하기도 했지요. 정부는 쌀값과 함께 연탄 가격 안정이 최대의 민생 현안이었어요.

/박동휘 기자


제 전성기는 1988년 이후로 급격히 끝나기 시작했어요. 올림픽이란 큰일을 앞두고 있던 정부는 서울 하늘의 새카만 매연이 골칫거리였지요. 지금도 미세먼지 때문에 난린데, 이땐 더 심했다니까 말 다했지요. 그래서 정부는 석탄 사용을 줄이기로 했습니다. 한때 전체 난방연료의 80% 이상을 차지했던 연탄은 결국 2% 밑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한때 400여 개에 달했던 연탄공장들도 이제는 45개밖에 남지 않았지요.

“1970~80년대에는 서울 시내 기준으로 하루에 1,000만 장 이상 생산됐는데, 지금은 공장 두 곳에서 성수기 기준으로 20만~30만 장 생산되고 있습니다. 과거에 비해서 연탄주문량은 한 20%씩 감소하고 있어요. 앞으로 2~3년 뒤면 전망이 없다 봅니다. 연탄 공장이 (전국적으로) 1~2개 남아있겠지요.” (신희철 / 서울 마지막 연탄공장 ‘고명산업’ 전무이사)

연탄재도 처지 곤란입니다. 연탄재는 정말 함부로 발로 차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법으로 정해져 있거든요. 환경오염 및 쓰레기 수거 문제로 온전한 상태로 쓰레기 종량제 봉투나 특수 마대에 넣어 버려야 합니다. 이 때문에 버리는 비용도 만만치 않지요.

/ 박동휘 기자


하지만 지금도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존재로 남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여전히 저소득층과 섬과 산골 등에 사는 약 14만 가구엔 제가 꼭 필요하거든요. 경기가 어려워지고 석유 가격이 오르면서 농장과 공장, 식당 등 자영업자들도 값싼 연료인 저를 많이 찾고 있답니다. 상업용으로 쓰이는 연탄이 절반 가까이 되지요.

그런데 최근 저를 찾는 사람들이 많이 줄고 있어요. 2년 전 100만 장씩 쌓였던 연탄 후원도 줄고 줄더니 올해는 50만 장에 불과하대요. 한 가구가 겨울을 제대로 나기 위해 필요한 연탄은 최대 1,200개 정도예요. 현재 연탄 소비자가격은 평지 배달료 기준 800원, 산간벽지 기준 900원 이상이에요. 100만원 어치의 연탄이 필요한 거지요. 하지만 서민들을 위해 정부가 지급하는 연탄 쿠폰액은 40만 원에 불과해요. 지원조차 받지 못하는 에너지 빈곤층도 4만여 가구나 되죠. 연탄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서민들의 삶은 팍팍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제 몸값은 매년 쭉쭉 (15% 이상) 오르고 있지요. 2년 전 가격과 비교하면 무려 50.8%나 올랐습니다. 정부가 연탄 가격 안정화를 위해 지급해오던 보조금을 오는 2020년까지 줄여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주요20개국(G20)과 약속한 내용이죠. 연탄의 원료인 국내 석탄산업도 꾸준히 쇠퇴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정부는 환경오염 등의 이유로 1989년 이후 석탄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실행해왔어요. 수많은 탄광을 없애고 생산량을 줄여왔지요.

/ 박동휘 기자


하지만 강원도 지역 탄광 마을 등에서는 석탄산업을 유지해줄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기도 합니다. 정부는 환경을 위해 석탄 사용은 줄여가되 관련 종사자들의 생계 보장과 에너지 수급 안정이라는 복잡한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전기에너지를 생산하는데 36~7%가 훨씬 넘는 에너지원이 석탄입니다. 폐광이라고 하는 것은 지역 주민들에겐 사실상 경제적으로 죽음이나 마찬가집니다. 아직까지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매장돼 있고요, 그걸 채굴할 수 있는 기술과 경제성도 있는데...서민 에너지원의 안정적 공급이라고 하는 측면에서 당분간은 석탄산업을 유지 시켜나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철규 자유한국당 의원 / 강원도 동해, 삼척)

/ 박동휘 기자


정부도 탈원전 기조를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발전 단가가 저렴한 석탄 의존도를 하루아침에 바꾸긴 어렵습니다. 석탄화력 발전의 1kWh당 발전단가는 2017년 기준 79원, 원자력 발전은 61원, 태양광 발전은 112원 수준이죠. 올 한 해 석탄산업 지원에 들어간 돈만 3,049억 원, 그중 탄가 안정대책 보조금은 1,551억 원 규모입니다. 또 석탄발전소를 오는 2022년까지 7기나 더 지을 예정이죠.

그래도 언젠가는 저도 차갑게 식을 거예요. 화석 연료는 어차피 사라질 운명이니까요. 앞으로는 민속촌에서나 저를 볼 수 있을지 몰라요.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시, 너에게 묻는다)

한 세기동안 한국인에게 따뜻한 온기를 전해줬던 저, 잊지 않으실 거지요?

/박동휘·강신우기자 slypd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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