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아메리카 퍼스트’를 강조하며 시리아 철군에 이어 아프가니스탄에 주둔 중인 미군 병력 감축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중동 내 외교균형이 급격하게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2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익명의 당국자들을 인용해 “아프간에 주둔한 1만4,000명의 병력 가운데 5,000~7,000명을 복귀시키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아프간에 미군 주둔시키는 것에 대한 인내심을 모두 잃었다”고 보도했다. WSJ는 미군 병력 복귀가 이르면 내년 1월 중 시작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트위터를 통해 “미국이 중동의 경찰이 되기를 원할까?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하는 일에 고마운 줄도 모르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소중한 목숨과 수조달러를 써가는 것 외에 아무것도 얻지 못하면서? 우리는 그곳에 영원히 머물기를 원하는가?”라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주의 외교’를 상징하는 ‘경찰’이라는 용어를 거론하며 “이제는 자국만을 위해 돈과 인력을 투입하겠다”고 선언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음을 나타내며, 특히 계속 강력해지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에 대해 참모들뿐 아니라 여당인 공화당에서도 중동 내 외교균형이 무너지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동맹국 및 미국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비판이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트럼프의 대통령의 고립주의 외교노선이 결국 자국민의 안전까지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우군인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조차 “우리의 아프간 파트너들은 혼자서 IS의 위협을 제압할 수 없으며 여기에 우리 정보와 군사력은 지역의 다른 동맹으로 대체될 수도 없을 것”이라며 “미군 철수는 지금까지 미군이 확보한 모든 것을 잃고 제2의 9·11에 길을 열어주는 일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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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로버트 뮬러 특검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로 압박을 받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면전환용으로 중동 철군 카드를 던졌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번 결정으로 터키와 러시아·시리아 등이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CNN은 “미군의 시리아 철군은 지난 14일 트럼프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통화 이후 이뤄졌다”며 “최근 미국은 터키에 35억달러 규모의 미사일방어 시스템을 팔기로 했다”고 전했다. NYT는 시리아에서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에 맞서며 IS 반군 소탕에 앞장섰던 쿠르드민병대가 트럼프 행정부의 시리아 철군 선언으로 억류 중인 3,000여명의 IS 포로들을 석방하는 것을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리는 “만일 그들이 석방된다면 유럽에 진정한 재앙이자 주요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중동지역에서 빼낸 전력을 인도태평양사령부로 돌릴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은 자원안보를 위해 2000년대 초반 주한미군 등 태평양 전력을 중동지역에 배치했지만 셰일가스 혁명으로 중동 원유에 대한 의존도가 줄면서 새롭게 해양강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특히 인도태평양사령부에 힘을 실어줄 경우 무역전쟁과 북한의 비핵화 협상에서 중국을 압박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미국이 중동 전력 감축에 더해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축소하며 해외주둔 비용 전반을 줄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싱크탱크 CFR의 스테판 세스타노비치 러시아·유라시아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외교관계의) 전략이나 노선이 없다”며 “그에게는 오직 분노만 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미국이 서구의 가치를 확산시켜 세계를 더 안전하게 하는 것이 곧 미국을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믿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강력한 군대를 주장하는 것은 세계의 안전이 아니라 오직 미국을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홍용기자 prodig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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