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인천의 바이오 기업 A사는 한 이메일을 받고 40억원을 해외로 송금했다. A사는 기존에 거래해오던 계좌번호와 다른 계좌였지만 이메일 아이디가 동일해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거래해오던 독일 업체에서 이메일을 보내지 않았다고 밝힌 뒤에야 사기임을 깨달았다. 경찰에 신고한 후 7시간 만에 불가리아 경찰청이 해외 계좌를 동결했다. 피해금액은 다음날 돌려받았다. 자칫 회사가 부도에 몰릴 수 있었지만 신속한 인터폴의 국제 공조 수사로 위기에서 벗어난 것이다.
범죄에 국경이 사라지면서 인터폴을 통한 국제 공조 수사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한국에 있는 사람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는 게 가능해졌고 해외여행이 일상화되면서 한국인이 해외에서 사건·사고에 휘말리는 일도 늘었다. 하지만 한국 경찰의 경우 사상 처음으로 인터폴 총재까지 배출했지만 담당 인력은 크게 부족해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경찰에 따르면 경찰청 기준 한국의 인터폴 관련 인력은 11명으로 일본의 5분의 1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인터폴은 국제범죄·테러·재난 등 치안 문제에 대한 국가 간 공조와 경찰 협력을 위한 기구로 총 194개 회원국이 가입돼 있다. 국내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외국으로 달아난 도피자, 외국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국내로 들어온 범죄자의 정보를 해외 수사기관과 공유하는 역할을 한다.
국내 인터폴 전담 인력이 10명을 간신히 넘는 반면 일본은 52명으로 우리나라보다 5배나 많다. 필리핀·라오스·미얀마·태국 등도 인터폴 인력이 30명을 넘는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관 1명이 유럽과 러시아 등 50개가 넘는 국가를 담당하는 경우도 있다”며 “시차로 인해 주말 없이 24시간 일하는 날도 많다”고 설명했다.
국내로 송환된 해외 도피 사범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올해 10월 말 기준 국내로 송환된 해외 도피 사범은 271명이다. 지난 2013년 120명에서 2배 이상 증가한 수준이다. 지난해에는 송환된 해외 도피 사범이 300명을 기록했다. 범죄 유형별로는 올해 기준 사기가 159명을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다. 마약(12명), 횡령·배임(10명)이 뒤를 이었다. 도피 국가로는 필리핀(92명), 중국(72명), 태국(22명), 베트남(13명) 등 아시아가 많았다.
해외에 도피 중인 수배자는 송환된 범죄자의 배를 넘는 게 현실이다. 인터폴 담당 인력이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인터폴 공조에 대한 수사 강제력이 없어 국가 간 협조에 기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인에게 거액을 빌린 뒤 해외로 잠적했다는 의혹을 받는 래퍼 마이크로닷의 부모와 돈스코이호 투자사기의 몸통으로 지목되는 류승진씨는 인터폴 수배 중이지만 현재 소재가 불분명하다. 과거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인터폴에 적색 수배된 상태에서 스스로 귀국할 때까지 4~5년가량 수사망을 피해왔다.
경찰 관계자는 “인터폴 총재 당선으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전담 인력을 추가로 배치하는 등 인력이 늘어나고 있다”며 “국내 지리적 특성상 해외도피사범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인 만큼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지영·최성욱기자 ji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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