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장관들이 무시한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홍남기 신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관한 내년도 경제정책회의에서 민간 투자 활성화 등을 보고받으면서 최저임금 등 노동 현안에 대해 속도를 조절하겠다고 말했다. 이로부터 3일도 지나지 않아 고용노동부는 정반대로 나갔다. 경영계가 애처롭게 반대했던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차관회의에서 통과시켰다. 경영계가 뒤통수 맞았다고 분노하는 마당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태연히 경총을 방문해 기업의 목을 죄는 공정거래법 개정에 협조를 부탁했다. 이 자리에서도 경총 회장은 주무 부처장관이 아닌 공정거래위원장에게 도와달라고 매달렸다.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의 핵심은 주휴(週休) 수당 문제다. 사업주는 주휴 수당으로 직원이 하루 3시간 5일 동안 주 15시간 일해도 1주일에 대해 1일분의 급여를 지급해야 하는데 이 제도는 일반 사람의 상식과 맞지 않고 다른 나라에서도 찾기 어려운 구시대의 유물이다. 시행령 개정안은 대법원의 판례 등으로 확립된 기존의 관행을 뒤흔드는 내용으로 시간당 임금을 계산하는 데 주휴일까지 포함시키도록 바꾸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불 임금이 졸지에 최저임금에 미달하게 돼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던 수많은 사업주들이 최저임금법을 위반한 범법자가 돼 처벌받는다. 연봉 5,000만원 넘게 주는 대기업도 최저임금법 위반으로 걸리고 자영업이나 영세 중소기업은 이런 사실도 모르고 있다가 날벼락 맞기 십상이다.
국민이 우습게 보이나. 법 해석의 최종 권한을 가진 대법원은 최저임금 계산에는 주 휴일이 빠진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고용부는 무시했다. 법을 집행하는 행정부가 대놓고 사법부를 부정한 것이다. 대법원 판례에 따라 확립된 최저임금 계산의 관행을 뒤흔들고 범법자를 양산하기 십상인 문제를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 한번 안 하고 슬그머니 법이 위임한 시행령으로 바꾸는 것이다. 국민과 기업에 지대하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라면 법을 개정해야 한다. 국회가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 진지하게 심의해야 할 문제인데 행정부가 멋대로 바꾸겠다는 것은 국민을 우습게 보는 것이다. 행정부 스스로 법치주의를 흔들고 사법부와 입법부에 대한 월권으로 3권 분립주의도 무시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이렇게 무리한 일을 고용부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다. 문 대통령이 경제정책의 방향을 수정할 것처럼 말했지만 공정거래위원장과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홍 경제부총리도 제치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정책 기조가 조금도 변화하지 않는다면서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주도성장을 그대로 밀고 나간다고 강조했다. 국정을 누가 주도하는지 눈치챈 고용부는 문 대통령이 아니라 핵심 참모의 지시를 따른 것이다. 문 대통령의 핵심 참모에는 좌파 운동가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이들에게 같은 뿌리인 민주노총 70만 조합원은 두렵고 그 10배를 훨씬 넘는 자영업과 영세중소기업은 우습게 보일지 모른다. 촛불 혁명의 동지인 민주노총 덕분에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으니까.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키는 날은 문재인 정부와 민심이 완전히 결별하는 날이 될 것이다. 국정의 난맥상을 고스란히 보여 준데다 쇠해버린 경제를 고꾸라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언행 불일치로 신뢰를 잃었고 참모 몇 명이 국정을 좌지우지한데다 최저임금 과속 인상과 주휴 수당 개악, 그리고 근로시간 급속단축으로 투자와 소비는 마비되고 소득 불평등만 커질 것이다. 최저임금법 위반으로 영세 사업주들이 줄줄이 불려가는 순간 민심은 정권을 덮치게 될 것이다. 이런 문제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이다.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부결시키고 국정의 난맥상을 야기한 참모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차제에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만들도록 최저임금법을 전면 개편하는 데 나서야 한다.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 등 근로기준법 개정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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