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차관회의까지 통과한 최저임금법 시행령을 국무회의 의결 하루 전 급작스레 재검토했다. 초봉 연 5,000만원이 넘는 대기업까지 최저임금법 위반으로 걸리면서 유급휴일(주휴시간)을 근로시간(분모)에 포함시켜 월 급여(분자)를 나누도록 한 최저임금 시행령이 기업부담을 키울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특히 대법원이 판례로 주휴시간을 제외하도록 정한 마당에 법률이 아닌 시행령으로 주휴시간을 포함하도록 규정할 경우 법원이 향후 해당 시행령을 위법하다고 판결할 수 있다. 이는 기업 현장에 최저임금으로 인한 혼란을 더하면서 정부에도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23일 경제계에 따르면 정부가 예정대로 24일 국무회의를 거쳐 최저임금법 시행령을 의결하고 내년부터 시행해도 법원이 시행령을 위법하다고 판단하면 사실상 효력을 잃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각급 법원이 최저임금 관련 소송을 처리하면서 주휴시간을 근로시간에 포함시킨 새 시행령에 대해 위헌명령·규칙·처분 심사를 거쳐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위헌명령·규칙·처분 심사는 국회가 정한 법률이 아닌 정부가 제정한 시행령 등 명령·규칙을 법원이 심사해 효력이 없다고 인정하면 그 적용을 거부하는 제도다. 다만 법원은 해당 규정의 적용만 거부할 뿐 무효 선언은 할 수 없다.
고용노동부는 주급·월급제 근로자의 급여(기본급과 고정수당)를 최저임금과 비교하기 위해 시급으로 환산할 때 분자에 주휴수당을 포함하고 분모인 근로시간에 주휴시간을 넣어야 한다고 판단해왔다. 1주 유급휴일을 2일 주는 기업은 상여·성과급을 뺀 월 고정급여를 243시간으로 나눈 값이 최저임금(내년 시간당 8,350원)보다 커야 한다. 하지만 대법원은 기존 법령상 주휴시간을 분모에서 빼야 한다고 일관되게 판결해왔고 이에 따른 분모는 174시간이다.
경제계는 아예 주휴시간을 분모에 포함하도록 못 박은 새 시행령이 상위법인 최저임금법에 위배된다고 본다. 법원이 적용을 거부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 대형 로펌의 노동 전문 변호사는 “최저임금법은 위반 시 형사처벌을 규정한 법이고 국내 헌법은 죄를 오직 법률로 규정하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며 “시행령에 따라 처벌 여부가 바뀌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대형 로펌의 노동 변호사도 “고용부 말대로 시행령을 개정했을 때 법원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판결을 바꿀지는 속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최저임금법·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의 상당수가 시행령으로 형사처벌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시행령 개정령안의 죄형법정주의 원칙 위배는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최저임금법 5조의2는 주급과 월급 근로자의 최저임금 비교환산 방식을 시행령에 위임하도록 정한 만큼 이번 시행령 개정령안은 문제가 없다는 게 고용부의 법률검토 결과”라고 덧붙였다. 특히 대법원의 그간 판례는 최저임금 환산 시 분모를 ‘월 소정근로시간’으로 규정한 시행령 조문을 글자 그대로 해석한 결과이기 때문에 월 소정근로시간에 유급휴일까지 포함하는 내용을 넣으면 법원 판례도 바뀐다는 게 고용부 주장이다.
이처럼 법조계와 정부의 시각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향후 법원의 판결 방향을 속단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의견이 많다. 경제계와 자유한국당 등 야권은 시행령 대신 국회 입법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법원은 이와 관련해 “고용부의 최저임금 시행령 개정에 따라 판례도 바뀔 것인지 여부는 현재로서는 언급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세종=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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