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전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트럼프 리스크’로 일본 ‘와타나베 부인’들이 된서리를 맞았다. 미국발 금융시장 불안으로 투자자들이 대표적 안전자산인 엔화로 몰리며 엔화가치를 끌어올리자 초저금리 엔화 자금으로 외화에 투자해 수익을 올려온 일본 개인 외환투자자들, 일명 ‘와타나베 부인’들이 대거 손실을 보고 있는 것이다.
올 초 이후 신흥국 통화는 물론 유로화와 미 달러화 대비로도 엔화가 일제히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내년에는 미중 무역갈등에 따른 글로벌 경기둔화까지 겹쳐 주요통화 대비 엔화가치 상승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연초 대비 엔화가치가 세계 주요통화 대비 줄줄이 강세를 보이면서 엔·캐리 트레이드(이자율이 낮은 엔화로 이자율이 높은 외화를 매수해 수익 창출)로 수익을 내는 와타나베 부인들 중 상당수가 손실을 보게 됐다고 24일 전했다. 신문이 외환거래 업체들의 자료를 통해 이들의 수익률을 조사한 결과(12월11~18일 기준) 올해 손해를 본 일본 개인 외환투자자는 전체의 46.3%로 수익을 낸 투자자(41.8%)보다 많았다. 이 같은 역전은 지난 2016년 이후 2년 만이다.
와타나베 부인들은 2012년 이후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의 여파로 엔화가 약세를 보이면서 이익을 부풀려왔다. 이후 2015년 중국 주식 하락과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결정으로 시장 불안이 극대화하면서 엔화가치가 치솟자 수익률이 악화됐다가 지난해 겨우 손익이 개선된 상태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트럼프발 시장불안이 고조되면서 엔화는 다시 독보적인 강세로 돌아서고 있다. 이달 초 달러당 113엔대를 기록하던 엔화가치는 현재 달러당 111엔 안팎까지 급등해 연초와 비교하면 미 달러화 대비로는 1.440% 절상된 상태다. 유로화 대비로는 연초 대비 7% 가까운 상승폭을 보이고 있으며 원화 대비로도 6.429%나 뛰어올랐다. 신흥국 주요통화 대비 절상폭은 두자릿수를 기록하고 있다. 올 들어 미국 금리 인상에 대한 우려로 자금이 이탈한 신흥국 통화에 비하며 일찌감치 강세를 보였지만 최근에는 이탈리아 재정불안과 영국의 ‘노 브렉시트’ 우려, 미국의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사태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경질설 등 트럼프 대통령발 악재로 유로화와 미 달러화까지 줄줄이 엔화 대비 약세로 돌아섰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엔고 현상이 내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미중 무역갈등이 해소되지 못한 상황에서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경기가 둔화하면서 ‘위기 회피처’로서 엔화의 위상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특히 내년 중반이면 미 경기 회복세가 전후 최장을 기록하며 본격적인 하강 흐름을 탈 것으로 보이는데다 미 금리 인상 속도도 늦춰지면서 시장의 혼란이 예상된다. 우에노 야스 미즈호증권 연구원은 “내년 7~9월 말에는 엔화가치가 달러당 100엔까지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박민주기자 park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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