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은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지난 100년의 국가적 성취를 되돌아보고 미래 100년의 비전과 발전전략을 설계해야 할 때다. 문재인 정부도 포용국가를 새 국가 비전으로 제시하며 새로운 발전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주 문재인 대통령은 확대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중심으로 사회적 대화와 타협을 적극적으로 도모해주기”를 당부했다. 이에 맞춰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사회적 타협(big deal)을 4대 경제정책 방향의 하나로까지 격상시키며 산적한 난제들을 풀어보겠다고 보고했다. 대타협을 기다리는 이슈들이 하나둘이 아니지만 핵심은 역시 노동계와의 타협이다. 우선 노동시장 개혁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개념설계도 격인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대타협이라는 마지막 문턱에 걸려 있고 공유경제의 총아로 각광받는 카풀 서비스 시행도 택시 노동자와의 타협을 기다리고 있다. 정치권이 연내 개정에 합의했던 탄력근로시간의 기간 연장 문제도 다시 사회적 대화 테이블에 올려졌다. 공공 부문 임금체계를 직무급으로 전환하겠다는 기획재정부의 방침이나 군산부터 통영에 이르는 남부해안 벨트의 고용위기 지역에서 새 일자리 2만6,000개를 창출하겠다는 산업통상자원부의 계획 모두 사회적 타협을 필요로 한다.
노동 문제 말고도 타협을 이루지 못해 여러 정권을 거치며 미뤄둔 숙제가 하나둘이 아니다. 10여년을 만지작거리던 서비스발전기본법은 아직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고 이명박 정부 사회통합위원회의 최대 치적으로 꼽히던 개정고등교육법(강사법)은 8년을 미루다가 내년 8월 시행을 못 박았지만 대학은 지금 벌집을 건드려놓은 것 같은 상황이다. 여러 정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편의점 판매가 허용된 의약품의 비중은 약사들의 저항에 막혀 선진국의 1%에 불과할 뿐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할 때 대통령의 당부나 경제부처 장관들의 다짐과는 달리 이익집단의 결사항전을 뚫고 내년 이맘때까지 대타협의 결실을 몇 개나 거둘지 의문이다. 설사 어떤 타협안이 나온다 하더라도 경제주체들의 절제와 양보에 의한 극적 타협이 아니라 정부 예산을 찔러주며 이리저리 이해타산을 꿰맞춘 억지 타협일 가능성이 더 높다.
돌이켜 보면 우리에게도 국민 감동의 대타협이 있었다. IMF 경제위기의 극대점에서 노동계의 전향적인 양보로 정리해고를 포함한 노동법 개정이 가능했고 광범위한 경제개혁과 정치개혁도 이어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금 모으기와 같은 국민운동도 일어났다.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한 대타협도 이런 대승적 양보와 국민적 감동이다. 70년을 이어온 남북의 군사적 대치와 남남갈등, 4차 산업혁명의 싹을 밟아버리는 여러 이익집단의 저항, 민주화 이후 30년이 지나도록 지속되는 사생결단의 정치에서 벗어나기 위한 국가적 대결단과 대타협이 지금처럼 절실한 때가 또 있을까 싶다. 우리는 이제 3만달러 소득 국가를 넘어 주요7개국(G7) 국가의 위상과 아시아의 리더국가로 발돋움할 수도 있는 대전환의 고빗길에 서 있다. 이 고비를 잘 넘기려면 남남갈등의 완화와 남북 경제협력으로 활력을 잃어가는 한국 경제에 새로운 기회의 창을 열어야 하고 노사 대타협으로 균열일터를 공정 노동시장으로 통합하는 길을 열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치 지도자들이 앞장서 기득권 내려놓기와 솔선수범으로 대결의 정치를 타협의 정치로 바꿔내는 정치개혁에 나서야 한다.
이런 요구를 담아내려면 정치 지도자들이 주도하는 여야정 상설협의체 차원의 국가 대타협이 돼야 한다. 노사에 앞서 국가 지도자들이 먼저 권한을 조금씩 내려놓으며 여러 이해집단의 동참을 호소해야 한다. 이 모든 대전환의 과제들을 국가 대타협이라는 큰 보자기로 싸야 한다. 여야정협의체가 주도해 경제사회노동위원회와 ‘대통령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정책기획위원회와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 역량을 결집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영광스러운 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이해 모든 이해집단이 각자의 이해타산을 잠시 뒤로 하고 대타협에 동참할 대의와 명분도 충분하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그러했듯이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대타협은 성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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