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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등돌리는 '키다리 아저씨'

조교환 디지털미디어부 차장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제루샤 애벗은 글 쓰는 재능을 인정받아 익명의 독지가에게 대학 진학을 후원받는다. 후견인에게 학업 진행사항과 자신의 일상을 담은 편지를 정기적으로 보내는 조건이다. 후원자의 도움으로 애벗은 대학을 졸업하고 작가라는 자신의 꿈을 이루게 된다.

어릴 적 읽었던 미국 작가 진 웹스터의 소설 ‘키다리 아저씨’ 내용이다. 키다리 아저씨는 애벗이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후원자의 그림자만 보고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길다며 지어준 별명이다. 지금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후원하는 독지가를 일컫는 말로 흔히 쓰인다.

가족이 없는 아이, 경제적 고통 속에 병마와 싸우는 환자, 차디찬 단칸방에서 홀로 지내는 노인들. 주위에는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더 아프게 와 닿는 사람들이 많다. 따뜻한 옷 한 벌, 든든한 밥 한 끼가 간절한 그들은 오늘도 ‘키다리 아저씨’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주변의 손길은 차갑기만 하다. 2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사랑의 온도탑’은 38.4도(21일 모금액 기준)를 가리켰다. 모금액은 1,57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82% 수준에 그쳤다. 모금기한이 절반 가까이 지나 이 추세라면 100도를 넘지 못할까 우려된다.



요즘 자선단체나 모금함에 선뜻 기부하기가 꺼려지는 게 사실이다. 경제적으로 팍팍해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 기부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누군가 유용해 허투루 쓰이지는 않는지 믿지 못하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딸의 친구를 살해해 최근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이영학은 딸의 수술비 명목으로 받은 기부금 12억8,000만원을 수입차 구매 등에 사용해 공분을 샀다. 또 지난해에는 모금단체 ‘새희망씨앗’의 회장과 대표가 모금액 127억원으로 호화생활을 해오던 사실도 드러났다. 이 같은 사건들이 알려지면서 기부 기피현상이 점차 확산하고 있다.

기부하는 분위기를 만들려면 모금단체의 투명성 제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정작 그들을 관리·감독해야 할 주무부처는 모금단체의 현황조차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다.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연간 1,000만원 이상의 기부금을 운영하는 단체는 지방자치단체나 행정안전부에 등록해야 한다. 하지만 그 기준이 되는 1,000만원은 단순한 숫자에 불과하다. 현금이 대부분인 기금 특성상 마음만 먹으면 모금액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모금단체의 사후관리도 강화해야 한다. 현재의 시스템은 공익성 검증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구조다. 기부금단체 운영을 관리하는 지자체와 행안부, 세제혜택 권한을 가진 기획재정부 등으로 분리, 운영되기 때문이다. 영국의 ‘자선위원회’와 같이 비영리 법인을 감시하는 독립기관을 설립해 철저하고 투명한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

나의 소중한 기부금이 헛되이 쓰이기를 바라는 기부자는 없다. 하루빨리 기금 사용의 투명한 검증 시스템을 마련하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이웃을 생각하는 순수한 마음이 선의를 악용하는 부도덕성 아래 더 이상 짓밟혀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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