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으로 국제사회에서 궁지에 몰린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이 외교사령탑을 바꾸는 행보로 분위기를 전환하고 있다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은 27일 새 외무장관에 이브라힘 알아사프 전 재무장관을 임명하고 아델 알주바이르 현 장관을 외교 담당 국무장관으로 전보하는 난국 돌파용 장관급 인사를 단행했다고 알자지라방송이 보도했다. 사우디 정부가 장관급 인사를 한 것은 카슈끄지 피살 사건이 발생한 후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우디 왕실에 비판적인 칼럼을 미국 워싱턴 포스트에 써온 사우디 언론인 카슈끄지는 지난 10월 2일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을 찾아갔다가 사우디에서 파견된 비밀요원들에게 잔혹하게 살해됐다. 이 사건에 사우디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사우디 정부는 국제 외교무대에서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사우디 정부는 미국에 살던 카슈끄지를 설득해 귀국시키려는 과정에서 현장요원의 잘못된 판단으로 벌어진 불미스러운 사건이라며 무함마드 왕세자의 직접적인 연루 의혹을 강하게 부인해 왔다. 파드 및 압둘라 국왕 집권기에 재무장관을 지낸 알아사프 신임 외무장관은 스위스에서 열리는 다보스포럼에 사우디 대표단을 이끌고 여러 차례 참가해 국제 투자업계에 이름이 알려진 경제·재무통이다. 현재 무함마드 왕세자가 관장하는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와 사우디 국부펀드의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아람코 웹사이트에 있는 그의 이력을 보면 미국 콜로라도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덴버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것으로 돼 있어 특히 미국 쪽에 폭넓은 인맥을 쌓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는 국무장관 시절인 지난해 11월 무함마드 왕세자가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해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던 반부패 사정 대상자에 포함돼 구금까지 당했지만 얼마 후 각료 회의에 복귀하는 것으로 건재를 과시해 주목받기도 했다.
알자지라는 사우디의 이번 외무장관 교체 인사 배경에 대해 외교부 관할인 이스탄불 총영사관에서 벌어진 카슈끄지 피살 사건의 책임을 지울 희생양을 찾고 무함마드 왕세자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면서 국제사회에서의 이미지 개선도 노린 다중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아랍정책연구센터의 마르완 칼라반 수석 정책애널리스트는 “알주바이르 장관이 압둘라 전 국왕 쪽 인물로 통했기 때문에 카슈끄지 피살 사건 이전부터 교체는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이라며 그런 상황에서 사우디 왕실이 적절한 시기에 카슈끄지 사건을 무마할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라고 말했다. 살만 국왕의 형인 압둘라 전 국왕은 2015년 1월 9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한편 이번 인사에서는 미국 유학파로 대학교수 출신이자 왕실 고문인 하마드 알셰이크가 교육부 장관으로 발탁되고, 살만 국왕의 장남이자 1985년 아랍인 최초의 우주비행사가 됐던 술탄 빈 살만이 관광청장에서 국가우주국 수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선은 인턴기자 jsez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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