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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홍우 선임기자의 무기이야기] 레이더 쐈다며 발끈한 日, 영상공개까지..'위기조장' 잇단 무리수

韓 인도적 작전에 저공비행 위협..정치적 도발도

日 내부서도 "초계기 노린 것 아니다" 목소리

"日, 中 도발엔 절절 기고 韓에 분풀이" 분석도

한일대치 우려 재확인..동해상 병력 확충 필요

일본 해상자위대 P-1초계기 /연합뉴스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공해상에서 표류 어선을 구조하던 한국 해군 구축함이 일본 초계기에 공격용 레이더빔을 발사했다고 주장하는 일본의 어깃장이 도를 넘었다. 양국 국방당국 실무자들이 오해를 풀자고 개최한 화상회의가 ‘우호적으로 진행됐다’고 알려진 직후 일본은 또다시 한국의 뒤통수를 때렸다. 관련 동영상을 공개한다는 것이다. 동영상을 본 국내 반응은 싸늘하다. 객관적 증거로서의 가치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일본은 왜 이리 무리수를 두는가. 두 가지 이유로 풀이된다. 첫째는 위기의식 조장. 일본 총리실과 여당이 강성발언을 주도하고 있다. 둘째는 작전교리 변경 가능성. 성능이 뛰어난 신형 초계기 P-1이 배치되면서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의 인도적 작전에 군사적으로 접근한 일본=사건 개요는 간단하다. 한일 공동수역인 대화퇴어장 부근에서 지난 20일 표류하던 북한 어선을 구조하려는 한국 해군 구축함 광개토대왕함의 머리 위에 일본 해상자위대의 P-1초계기가 접근하면서 사건이 불거졌다. 광개토대왕함이 공격용 레이더를 일본 초계기에 쐈다는 게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한 일본 측의 주장이다. 반면 한국은 표류 중이라는 1톤급 목선을 찾기 위해 가용한 수단을 모두 동원했으나 결코 공격용 레이더를 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양측의 견해가 팽팽한 가운데 당사자인 한국 해군은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탐색용 레이더(MW-08)를 돌려 조난선박을 수색한 적은 있어도 공격용(표적 추적용) 레이더에 해당하는 STIR 레이더는 가동한 적이 없다는 입장 외에는 내놓은 것이 없다. 하지만 예비역들은 말을 쏟아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반응이 인도주의적 의무를 다하려는 한국 해군을 일본이 군사적으로 ‘간 봤다’는 것. 광개토대왕급 구축함의 함장 출신 예비역 제독은 “해난사고 구조는 권고가 아니라 의무”라며 “수상구조 활동으로 바쁜 광개토대왕함에 일본 초계기가 비정상적으로 접근해 ‘대공 상황’을 추가한 것”이라고 정리했다. 수색활동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광개토대왕함의 활동에 군사적 관점으로만 대응했다는 얘기다.



◇‘도발 당사자는 오히려 일본 초계기’=해군의 다른 예비역 대령은 일본 해상자위대의 잘못을 세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구조활동에 나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 측은 P-1초계기도 구조활동에 나섰다가 광개토대왕함을 발견했다고 주장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일본 국내 기술로 개발한 4발 제트엔진 초계기인 P-1은 넓은 바다에서 잠수함의 잠망경이나 스노클까지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가졌지만 정작 표류어선 탐색보다는 광개토대왕 추적과 접근에만 매달렸다.

둘째, 결정적으로 피아 식별이 안 된 상태에서 광개토대왕함 위를 저공으로 날았다. 공해상에서 미식별 항공기가 접근해 머리 위까지 왔는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함장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징계받아 마땅하다. 작전 실패를 용서받을 수는 있어도 경계 실패는 용서받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군함은 항시대비 태세를 갖춰야 하며 함장은 개함 방어의 무한책임을 진다. 일본 해상자위대는 지난 1995년 림팩 훈련에서 미 해군 소속 A-6E공격기를 격추시킨 적도 있다.

셋째, 무기체계의 특성을 잘 알 만한 해상자위대가 전혀 전문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 탐색용(MW-08)은 물론 표적추적용 STIR레이더가 가동돼도 실제 공격까지는 각종 안전장치 해제 등 추가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지만 일본 정치권의 무리한 한국 때리기에 침묵하고 있다는 얘기다. 해자대가 능력이 없거나 아니면 정치권의 눈치를 보느라 입도 뻥긋 못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온다.



◇일본 내부에서도 ‘무리’ 목소리=일본 항공자위대의 막료장(참모총장) 출신 군사평론가인 다모가미 도시오씨는 일본이 난리 피울 일이 아니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는 방위성의 레이더 문제 발표 직후 “한국 함정이 해자대 초계기를 노리고 레이더파를 조사한 게 아니라고 본다”며 “미사일이 발사되려면 함정 내 여러 부서에서 동시에 안전장치를 제거해야 한다. 미사일이 갑자기 날아올 일은 없다”는 견해를 트위터에 밝혀 일본 네티즌들의 뭇매를 맞았다. 그는 2008년 ‘일본은 침략국가였는가’라는 논문에서 “중일전쟁은 장제스와 국제공산주의자들의 책략 때문이고 태평양전쟁도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책동에 일본이 당한 것”이라고 주장해 항공막료장 자리를 내놓았던 인물. 핵무장을 주장하고 “일본의 식민지배로 조선이 발전했으며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에 참수당한 일본인도 실은 재일조선인”이라는 주장도 펼쳐 극우혐한 인사로 분류되지만 대공미사일과 방공 분야의 전문가인 그의 주장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日 초계기, 한달 내내 한국 해군 추적=보다 주목할 만한 사실이 두 가지 더 있다. 하나는 일본이 한국 해군을 줄곧 감시해왔다는 것이다. 연례적인 독도방어훈련이 실시된 이달 초순께를 전후해 훈련의 핵심 함정인 광개토대왕함의 움직임에 신형 초계기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지 점검해왔다는 것이다. P-1초계기 20여대가 배치된 지금도 이토록 공세적이라면 계획대로 70여대의 생산배치가 완료되는 시점 이후 일본은 더욱 노골적으로 한국을 군사적으로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는 유사시 전력비교. 만약 해당 해역에서 일본 초계기와 광개토대왕함 간 실전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볼 것도 없다. 백전백패. 레이더와 대함미사일·대공미사일의 사정거리를 따져볼 때 동해에서 광개토대왕급 구축함으로는 일본 해자대의 초계기 세력도 상대하기 어렵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보다 긴 대공미사일을 탑재한 KD-Ⅱ 문무대왕급 구축함 이상 함정의 동해 배치가 논의될 필요도 있다.

광개토대왕함. /연합뉴스


◇역사는 반복되나, 2006년 한일대치 데자뷔=2006년 4월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측량선 두 척이 독도 인근에서 해양조사를 하겠다며 근접한 것을 우리 해양경찰이 함정 18척을 동원해 막았다. 그해 9월에는 우리 해양조사선이 독도 인근을 조사하자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들이 몰려와 대치하는 바람에 이를 외교 협상을 통해 풀었다. 일본은 이후 마이즈루호위함대의 전력을 크게 늘렸으나 우리 측은 크게 진전된 게 없다. 대형 해경함정 몇 척이 진수됐을 뿐이다. 동해와 원양작전에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1998년 실전 배치된 광개토대왕함이 20년 만에 일본과 대치 전선에 섰다는 점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독도뿐 아니라 어느 곳에서도 한일 간 해상대치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일로 확인된 이상 보다 중장기적인 대응책이 필요해 보인다. 초계기 추가 도입과 각종 신형함 건조계획의 신속한 집행 등이 바로 그것이다.

◇중국에는 절절매고 한국에는 기세등등…두 얼굴의 일본=11월5일,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쪽인 가고시마현 앞바다에서 황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중국 어선들의 불법조업 신고를 받은 일본 수산청이 현장을 확인하고 중국 어선에 올랐으나 감금된 것. 중국 어선은 수산청 직원 12명을 태운 채 반나절을 도주하고서야 풀어줬다. 일본은 중국에 비공개 항의했을 뿐이다. 언론 보도로 사실이 밝혀지기까지 일본 정부는 쉬쉬하며 입을 막았다.

무려 한 달 반 동안 국민의 눈을 가렸던 일본 정부가 한국을 대하는 태도는 정반대다. 한국 해군의 광개토대왕함과 일본 초계기가 조우한 지 불과 하루 만에 총 공세에 나선 것. 연일 한국 때리기에 여념이 없다. 이례적으로 아베 총리가 직접 한국의 책임론을 주창하고 여당인 자민당에서는 한국 해군의 사과와 책임자 문책까지 주장하고 나섰다. 양쪽의 오해를 풀자는 실무자급 화상회의가 “우호적으로 진행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 느닷없이 일본 언론에서 “동영상 공개로 진실을 가리겠다”는 보도가 나왔다. 한국 입장에서는 적반하장도 억울한데 수차례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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