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내년에 국제포경위원회(IWC)를 탈퇴하기로 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 25일 각의(閣議·국무회의)에서 IWC 탈퇴안을 의결, 다음날 식용 고래잡이를 재개하기 위해 IWC에서 탈퇴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IWC 규정에 따라 일본 정부는 다음달 1일까지 IWC 사무국에 탈퇴 의사를 통보하면 내년 6월 30일부터 발효된다. 일본은 IWC 탈퇴 후 일본 근해나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상업 포경에 나설 방침이다.
세계 각국에서 고래를 마구 잡아들이면서 개체 수가 급격히 줄자 IWC는 지난 1986년 판매 등 상업적 목적을 위한 고래잡이를 ‘일시중지(moratorium)’시켰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어느 정도 개체 수가 회복됐다고 주장하며 IWC에 포경 재개를 거듭 요청해왔다. 지난 9월 브라질에서 열린 IWC 총회에 해당 안건이 회부 됐지만, 당시 찬성 27개국·반대 41개국으로 부결되며 일본은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부결에 나름의 이유는 있다. 일본은 IWC의 일시적 제재에도 그간 남극해와 북서태평양 등지에서 ‘꼼수 포경’을 계속해 왔기 때문이다. 고래잡이에 대한 반감이 쉽게 가라앉을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일본 정부는 결국 상업용 고래잡이(포경)를 자국 주변에서라도 재개하기 위해 IWC를 탈퇴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일본의 국제기구 탈퇴는 극히 이례적이다. 일본 내각 일부에서도 IWC 탈퇴로 일본이 국제사회의 규범을 경시하는 ‘약탈 포경국(pirate whaling nation)’으로 낙인 찍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일본의 IWC 탈퇴에 호주 등 반(反) 포경국을 중심으로 비판이 고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마이니치신문은 가토 다카시 세케이대 정치학 명예교수의 말을 빌려 “일본은 전후 국제협조주의를 관철해왔다”며 “자신의 주장이 통하지 않는다고 국제적인 틀로부터 빠져나가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일본이 이번 조치를 강행하는 데는 일본 내 고래고기에 대한 높은 수요를 더 이상 억누르는 것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판단이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국제적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일본의 오랜 식(食)문화 단절을 피하기 위한 행보라는 해석이다. 일본 국민은 고래고기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육류가 부족한 상황에서 고래고기는 일본인의 주요 단백질 공급원 중 하나였다. 고래 부위 중 으뜸으로 치는 것은 뱃살로, 일본인들은 소금으로 절인 뱃살을 훈제한 뒤 얇게 썰어 베이컨처럼 불에 구워 먹기를 즐긴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의 고래 소비량은 1960년대 이후 연간 23만톤 이상에 달한다. 이후 고래잡이 과정의 잔혹성 등이 알려지면서 소비가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연간 유통량이 5,000톤이나 된다. 일부에서는 고래포획을 식문화 등 문화적 영역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시각도 있다.
일본의 IWC 탈퇴 결정에는 정치적 계산도 깔려 있다는 해석도 있다. 과거 상업 포경이 활발했던 홋카이도, 아오모리, 미야기현 등을 지역구로 둔 여당 의원들의 압박을 일본 정부가 수용해서 이뤄지게 됐다는 풀이다. 실제로 포경선의 거점이 있는 야마구치 현 시모노세키 시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연안 포경이 번성한 와카야마 현 다이지정은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의 지지 기반인 곳이다. 침체된 포경 산업 부흥 등을 위해 IWC 탈퇴를 강행한 것 아니냐는 뒷말도 나오는 이유다. /김민정기자 je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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