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핑크 타이드(Pink Tide·좌파 물결)’ 퇴조에 방점을 찍은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 새해 첫날에 공식 취임한다. 극우 성향의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이미 남미의 ABC로 불리는 아르헨티나·칠레 등과 함께 기존 좌파 중심 블록에서 벗어나 ‘자유주의 동맹’을 구축하겠다고 천명한 만큼 취임 이후 남미 정치·경제지형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친미·친시장을 표방하는 보우소나루 정부의 경제정책과 연금개혁이 성공을 거둘 경우 콜롬비아·아르헨티나 등 남미의 중도 우파 집권 국가의 우향우가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29일(현지시간) 주요 외신에 따르면 내년 1월1일 열리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취임식에는 전 세계 우파 정권의 수장들이 한자리에 모일 것으로 보인다. 남미 지역에서는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과 이반 두케 콜롬비아 대통령, 마리오 아브도 베니테스 파라과이 대통령 등이 참석하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등이 자리를 함께한다.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대신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참석한다.
취임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내년 1월16일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보우소나루가 집권하는 브라질을 방문한다.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두 정상의 만남이 남미 우파 연대로 이어질지 주목하고 있다. 앞서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남미 지역 정상들과 이른바 ‘자유주의 동맹’ 결성을 위한 대화에 나서겠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가 대화 상대로 꼽은 정상은 마크리 대통령과 피녜라 대통령, 두케 대통령, 베니테스 대통령 등이다.
관련기사
특히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미국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남미 좌파 국가 연합이 지난 1991년 결성한 ‘남미공동시장(Mercosur·메르코수르)’와 남미국가연합 등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가 2012년 6월 멕시코·페루·콜롬비아·칠레가 출범시킨 경제동맹인 태평양동맹으로 경제노선 방향을 돌리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의 중남미 공략을 막으려는 미국 정부가 친미 정권이 들어선 브라질과의 연대 강화를 모색하고 있어 중남미가 메르코수르 결성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짚었다. 라틴아메리카 사회과학연구소(Flasco)의 국제관계 전문가 다이아나 투시는 “투자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 경쟁의 새로운 사이클이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극우파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집권으로 콜롬비아와 칠레·아르헨티나 등 남미 중도 우파 국가들의 행보도 기로에 놓였다. 이들 국가의 온건한 우파 정권이 극우 보우소나루와 충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과 더불어 이들이 보우소나루의 영향을 받아 더 오른쪽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당장 내년 10월 재선거를 치러야 할 아르헨티나 마크리 대통령의 행보가 주목된다. 아르헨티나 수출의 16%를 차지하는 브라질의 경제개혁 성패는 마크리 대통령의 재선을 앞두고 아르헨티나가 경기침체를 벗어날 수 있을지 여부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만약 브라질 경제가 성공적으로 회생하면 마크리 대통령도 극우 쪽으로 기울 수 있다고 FT는 전망했다.
한편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공식 취임을 앞두고 이미 경제개혁에 시동을 건 상태다. 신자유주의 학자들의 산실인 시카고대 출신 경제학자 파울루 게지스를 경제장관으로 임명해 브라질 좌파정책의 대전환을 예고했으며 취임 직후 국유기업 수십곳을 매각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연금개혁을 내년에 마무리하고 정치인·공무원 특권 축소, 공무원 감축 등을 통해 재정건전성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오는 2020년까지 재정수지를 흑자로 전환하고 임기 4년 동안 1,00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박민주기자 parkmj@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