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말의 들뜬 분위기를 망쳐놓았다.
시리아에서 미군 병력을 철수하겠다는 갑작스럽고도 일방적인 결정, 대통령의 충동성을 막아줄 유일한 방어벽이던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의 등 떠밀린 사임은 비단 연말 시즌뿐 아니라 미국의 미래에까지 짙은 먹구름을 드리웠다.
매티스는 사직서에서 대통령은 자신과 일치하는 ‘세계관’을 지닌 국방장관을 임명할 권한을 지닌다고 했다.
그것만으로도 끔찍하다. 남녀를 불문하고 트럼프의 세계관에 맞는 인물이 미치광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모노폴리 놀이를 해가며 군사전략을 짜내는 군 최고 통수권자의 명령을 기꺼이 받들 장군은 이제 몇 명 남아 있지 않다.
매티스는 역효과를 일으킬 대통령의 어리석은 결정을 막는 데 실패하자 타고 있던 배를 버리는 것만이 그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라고 판단하고 스스로 사임했다.
그의 결정이 완전히 자율적인 것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매티스는 다수의 이슈에 대해 대통령과 공개적인 의견 불일치를 보였다. 그리고 거기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아무런 근거 없이 평양이 핵 개발 야욕을 완전히 포기했다고 선언해가며 북한 지도자 김정은과 벌인 기이한 연애 놀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단속적인 로맨스, 문제투성이인 중국과의 무역전쟁 등에서 알 수 있듯 트럼프는 지구촌의 안정을 지키는 세계 최강대국 지도자가 아니라 카지노에서 룰렛 게임을 하는 노름꾼처럼 행동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건 새로울 것이 없는 얘기다. 트럼프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 그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무시한다(매티스, 시리아와 관련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의 경우가 그렇다). 대통령은 읽지도 이해하지도 못해서인지 서면보고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폭스뉴스에서 정보를 얻고 트위터로 소통한다. 시리아 철군 결정도 트위터로 발표했다.
미군 파병과 철수에 관한 트럼프의 우매함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다면 참호와 사막에서 싸우고 있는 노련한 남녀 베테랑 장병들에게 그의 명령을 트위터로 전달하는 대통령을 상상해보면 된다.
중대 사안을 트위터로 알리는 것은 대통령답지 않은 처사고 보다 솔직하게 말하면 남자답지 않은 짓이다.
그런 대통령 아래에서 매티스가 왜 그토록 오래 버텼는지 많은 사람이 궁금해할지도 모른다.
그들의 궁금증에 대한 대답은 의무다. 대통령의 이름이 쓰인 문장 안에 절대 함께 집어넣고 싶지 않은 소중한 단어다.
트럼프가 중동을 불확실성과 위험 속으로 밀어 넣은 변환점에서 매티스의 의무는 군 최고 통수권자에게 등을 돌리는 것이었기에 그는 그렇게 행동했다.
매티스는 사직서에서 미국은 러시아와 중국에 ‘모호하지 않은’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가 시리아에서 미군을 철수시키는 것이야말로 매티스가 경고한 모호한 태도일 수 있다. 푸틴은 트럼프의 결정을 ‘올바른 조치’라며 환영했다.
베이징은 이미 오래전부터 트럼프를 멍청이로 간주해왔기 때문에 그가 중국이라는 거인의 책략에 영향을 주는 일은 거의 없다.
한편 트럼프의 결정에 따라 쿠르드족은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터키와 이슬람국가(IS)에 홀로 맞서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했고 이스라엘은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됐다.
이스라엘 신문인 하아레츠의 편집위원실은 트럼프가 “베냐민 네타냐후의 뺨을 후려쳤다”며 미국의 개입은 중동 지역의 게임 규칙을 정하는 데 “러시아에 맞서는 중요한 균형추 역할을 해왔다”고 강조했다.
하아레츠의 아모스 하렐 편집위원은 “많은 미국인이 트럼프가 곤경에 처했고 너무 변덕스럽게 행동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 정부로는 트럼프의 장기적인 지지를 확신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의 ‘문제’는 물론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가 진행 중인 수사인데 일부 소식통은 내년 2월까지 조사가 마무리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군을 시리아에서 철수시킨다는 트럼프의 결정이 개가 꼬리를 흔드는 게 아니라 꼬리가 개를 흔드는 상황을 만들어 대중의 관심을 그의 문제로부터 떼어놓으려는 조작인지는 좀 더 논의를 필요로 하지만 그의 성격이나 이제까지의 기록으로 보아 여론을 호도하려는 수작이라는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기 힘들다.
트럼프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시리아에서 IS가 끝장났기 때문에 미군의 주둔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자랑스레 밝혔다.
사실이 그렇다 해도 미군의 시리아 주둔은 장소와 시간의 제한 없이 끝없이 계속되는 두더지 잡기 게임인 테러리스트 소탕을 위한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테러리스트들이 다시는 새로운 싹을 내지 않도록 확실하게 단속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또 그것은 아프가니스탄에 관해 매티스가 밝힌 견해의 요체다. 매티스는 미군의 대규모 아프간 철수는 미국의 국내 안보를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동 지역의 테러리스트 집단들은 미국이 발을 빼기만을 기다려왔다. 과거에 늘 그랬듯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미국을 끝장내는 데 필요하다면 언제까지라도 기다릴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들보다 한발 앞서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