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민간 기업인 KT&G의 사장 인선에 개입하려 했다는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폭로는 그 자체도 충격적이지만 더욱 눈에 띄는 것은 그 방식이 주주권 행사라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기재부의 소위 ‘내부 문건’은 KT&G의 2대 주주이자 기관투자가인 기업은행을 통해 사장후보자추천위(사추위)의 투명·공정한 운영을 요구하는 주주권 행사를 사장 교체의 ‘전술’로 삼았음을 보여준다. 이를 위해 기업은행은 지난 2005년 이후 무려 13년이나 흐른 지난해 2월 지분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변경했다. 의결권 행사를 위해 필수적인 자문사를 움직여야 한다는 계획도 세워놨다. 기관투자가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한 기업 경영의 투명성 제고. 이것이야말로 정부가 역점 정책으로 추진한 스튜어드십 코드의 취지 아닌가. 폭로가 사실이라면 KT&G 건은 정부의 입김이 어떻게 스튜어드십 코드라는 외피를 두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스모킹건이 될지도 모른다.
이번 사태는 정부가 정책의 신뢰에 스스로 균열을 내는 우가 될 수 있다.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이 303개(2018년 12월 기준)나 되는 국민연금이 2018년 8월 참여를 전격 결정하면서 스튜어드십 코드는 확산 일로로 나아가는 분위기였다. 이른바 연금 사회주의에 대한 우려보다는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벗을 수 있다는 정부의 말을 한 번 믿어보자는 시각이 늘고 있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토종 사모펀드인 그레이스홀딩스(KCGI)의 한진칼 경영 참여로 ‘한국형 행동주의’의 현황을 가늠해볼 만한 사례도 나왔다. 그런데 정작 정부는 딴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지 씁쓸하다. 이래서야 스튜어드십 코드의 진정성을 누가 믿어줄 수 있을까.
장밋빛 전망만 늘어놓기 전에, 스튜어드십 코드를 걱정하는 목소리를 ‘친(親)시장주의’로 매도하기 전에 연기금의 독립을 강구할 방안을 정부가 마련하는 데 매진했다면 이런 의심을 살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불신을 씻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시간이 이미 많이 흘렀다. 불과 3개월 정도만 지나면 상장사의 의결권 행사가 무더기로 이뤄지는 주주총회 시즌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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