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외교사에서 가장 뼈아팠던 사건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권과 일본의 대한제국 지배권을 상호 승인한 미일 간의 가쓰라·태프트밀약(1905년)이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일본은 조선의 주권을 본격적으로 침탈하기 시작했다. 이에 위협을 느낀 대한제국은 1882년에 맺은 조미수호통상조약의 ‘거중조정’ 조항을 믿고 미국과의 외교에 총력전을 펼쳤다. 거중조정은 일방이 제3국의 위협을 받을 때 반드시 도와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미국은 국익에 따라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러시아의 극동지역 팽창을 막기 위해 대한제국과 맺은 조약보다 일본과의 전략적 제휴를 선택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미소 간의 냉전체제로 인한 미국의 대외정책으로 한국은 또다시 역사의 희생양이 됐다. 미국은 미군철수(1949년), 애치슨라인(1950년) 등 냉전기에 소련을 견제할 전략적 국가로 한국을 제외했다. 이는 사회주의 진영의 오판을 불렀고 민족사 최대의 비극인 한국전쟁 발발로 이어졌다. 비극의 결과로 한미동맹이 강화되면서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전략적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외교적 수난은 이어졌다. 1969년 베트남전쟁에서 막대한 피해를 본 미국은 닉슨독트린을 통해 미군 감축 방침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한국의 강력한 반대에도 미국은 1970년 7월 주한미군 감축 계획을 한국 정부에 통고했다. 한국은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다시 한 번 위기를 맞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 위협 등으로 한미 방위비 분담금 비용 상향조정과 한미 무역 불균형 시정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며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미중 패권경쟁이 심화하고 북미 비핵화 협상이 긴박하게 전개되는 상황에서 한국은 다시 냉혹한 국제질서 속에서 내던져졌다.
/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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