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생님, 화장실 가고 싶어요.” 한글을 못 읽는 지영(가명·12)양이 휴대폰 음성인식 서비스 ‘시리’를 이용해 교사에게 문자를 보냈다. 수신 대상을 정한 뒤 내용을 불러주자 휴대폰이 지영양의 말을 곧바로 문자로 바꿔 보냈다. 글을 못 읽으면 문자도 못 하는 줄 알았던 담당 교사는 입이 벌어진다.
#2 중증 자폐성장애를 가진 준우(가명·15)군이 옷장에서 패딩을 꺼냈다. 계절에 맞는 옷을 꺼내 입을 줄 몰라 늘 부모의 도움을 받아야 했지만 이제는 혼자서도 외출할 수 있다. 사용자의 실시간 위치를 분석한 뒤 날씨에 맞는 옷차림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아이드레스’ 앱 덕분이다. 한겨울에 반팔 옷을 입는 준우를 보고 가슴이 미어졌던 부모는 이제 한결 가벼운 얼굴이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적정기술’이 있다. 값비싼 첨단기기도 화려한 가상현실(VR) 기술도 필요하지 않다. 간단한 위성항법시스템(GPS)과 음성인식 기술만으로도 장애로 인한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3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난 김성남 발달장애소통과지원연구소장은 “발달장애인의 사회통합을 돕는 기술이 장애 유형별로 많은데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며 “일선 교사와 부모들이 발달장애인 자립교육에 활용하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생활교육’도 IT 시대=발달장애 학생은 청소년기에 돈 계산법과 기초 의사소통법 등 자립에 필요한 일상생활 기술을 배운다. 최근에는 전자기기가 늘면서 이들이 체득해야 할 기술도 바뀌었다. 과거에는 일일이 동전 계산법을 배워야 했지만 지금은 카드만 내밀면 저절로 계산이 된다. 과거에는 열쇠로 문고리를 돌리는 법을 배워야 했지만 이제는 전자키를 아파트 1층 출입구에 대기만 해도 문이 열린다. 스무 살 지적장애 아들을 둔 정유진(48)씨는 “아들이 숫자를 못 세는데도 카드 사용법을 배운 뒤 혼자 장을 보고 계산을 한다”며 “건물을 출입할 때나 대중교통을 탈 때도 비슷하게 활용하는 것을 보고 너무 놀라고 감사했다”고 말했다.
지능이 낮다고 해서 기술을 활용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편견이다. 오히려 한 번 각인된 지식은 여러 군데 활용할 수 있다. 단어를 발음하지 못하는 중증 자폐성 장애 지수(가명·19)양은 수년에 걸친 훈련 끝에 앱에 있는 각종 그림을 조합해 ‘물 먹고 싶다’ ‘길을 건너겠다’ 등 자신이 원하는 문장을 타인에게 전달한다. 지적장애를 가진 동환(가명·12)군도 유튜브로 좋아하는 연예인의 동영상을 찾아보고 아이폰 음성인식 서비스를 활용해 친구와 연락을 주고받는다. 복잡한 언어교정이나 수술을 거치지 않고도 지역사회와 다양하게 소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모두 학교가 아닌 부모와 친구들에게 배운 기술들이다.
◇세상은 변하는데 교실은 그대로=특수학교를 다녀도 국어·수학·사회·과학 등 기본 교육과정과 정보통신화 과목을 통해 전자기기와 휴대폰 기본 활용법을 배운다. 그러나 타자 연습이나 검색하기 등 비장애인 위주의 컴퓨터 교육과 크게 다르지 않고 과목마다 가르치는 내용이 흩어져 있어 단기 기억력이 약한 발달장애인이 배우기 적합하지 않다. 교사들은 주어진 교과 시간에 진도 나가기만도 바쁘고 인쇄된 특수학교 교과서에는 ‘유선전화기 사용하는 법’과 같이 실용성 떨어지는 내용이 여전히 수록돼 있다.
홀로 남겨진 부모들은 마주 선 기술 장벽이 높게만 느껴진다. 앱에 대한 기본 정보도 없거니와 각기 다른 장애 특성에 꼭 맞는 앱을 찾기도 어려워서다. 설상가상 발달장애인 전용 앱들은 안드로이드폰보다 아이폰에 많은데 대부분 제목과 설명이 영어로 돼 있어 보호자들의 심리적 부담이 크다. 휴대폰 기본 운영체제에 장애인 전용 ‘손쉬운 사용’법도 탑재돼 있지만 모르는 부모가 여전히 많다.
◇더 많은 ‘실용형 자립교육’ 필요해=학부모들은 창의적 체험활동과 자유학기제, 사회 수업 등을 최대한 활용해 변화하는 세상과 교실의 간극을 메워달라고 입을 모은다. 시계 보기나 돈 계산하기, 수학 문제 풀이 같은 ‘책상형 공부’ 대신 당장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술을 가르쳐달라는 요구다.
정병은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발달장애 학생 교육에서는 단순히 교과서 개념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간판을 읽거나 지하철 숫자를 구분하는 등 기능적 읽기와 쓰기를 가르쳐야 한다”며 “아이마다 지능 수준과 이해도가 다 다른 만큼 지식 전수형 교육만으로는 사회에 통합돼 살아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선형 평택대 재활상담학과 겸임교수도 “지능이 낮은 발달장애인일수록 스마트 기기의 수혜를 많이 받는데 아직 스마트 교육의 책임은 각 가정과 특수교사들에게 맡겨져 있다”며 “성인이 되기 전 중고등학교 때부터 스마트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교육 현장의 고민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신다은기자 down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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