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는 이름조차 생소한 콘셉트 아티스트는 영화, 포스터, 만화 등 시각 요소에 의존하는 분야에서 디자인의 기초적 방향성을 짜는 전문가다. 최근 들어 다양한 분야간 융합(Convergence)이 중요해 지면서 콘셉트 아티스트의 중요성은 점점 크게 높아지고 있다. 한 가지 소재가 여러 측면의 디자인으로 응용되는 사례가 커지면서, 그만큼 기초적 방향성(콘셉트)의 중요성이 높아지기 시작한 덕이다. 이런 와중에 세계 최대의 자연사 박물관에서 첫 콘셉트 아티스트로 맹활약하고 있는 한국인의 이야기가 들려와 청자들의 관심이 쏠린다.
콘셉트 아티스트 겸 일러스트레이터 양혜령(30)씨는 미국 최대 규모 박물관인 스미스소니언 항공 우주 박물관(Smithsonian National Air and Space Museum)의 처음이자 유일한 콘셉트 아티스트로 근무하고 있다. 현재는 박물관의 외부 및 내부 기계 시스템을 포함해 다양한 전시회와 인테리어의 디자인을 전적으로 맡고 있다.
양혜령은 다소 늦은 나이에 미술업계에 진출했지만,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경력을 쌓은 덕분에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입사한 리듬앤휴스(Rhythm and Hues Studio)가 파산하자 그는 본격적인 프리랜서 활동을 시작했다. ‘Ant Studio Inc.’를 설립해 미국 대형 광고사 The Mill과 함께 게임 ‘콜 오브 듀티: 고스트’,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ㆍ아디다스 등의 광고 배경을 작업했다. 이후 소니와 계약을 맺은 영화의 콘셉트 및 배경 원화 등을 제작했다. 2015년에는 시애틀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의 가상현실 프로그램 개발팀과 계약을 맺기도 했다. 1년 반 동안 마이크로소프트의 콘셉트 아티스트로 활동하며 다양한 영화 및 게임 콘셉트, 디자인, 배경 등의 작업을 지속했다.
전시 이력으로는 전주 기린 미술관 (2018), 스미소니언 항공 우주 박물관 East Wing 3rd Floor Gallery (2018) 등이 있다.
또한 영화 RIPD, 겨울왕국, 호빗 뜻밖의 여정, Sinister II을 비롯해 광고 아디다스, 텔레콤, 나이키, Farmer’s Insurance, 코카 콜라 등에 참여했으며 그 외 참여 프로젝트로는 마블 유니버스 라이브, 마이크로 소프트 홀로렌즈, 스미소니안 우주 항공 박물관 Advancement Project 등이 있다.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꾸준히 전시회에 출품하기도 했다. 2017년에는 미국 오클라호마에 소재한 Bauhaus Prairie Art Gallery의 전시회 ‘Electric Art 2017’에 출품해 ‘Best of Show’와 ‘Honorable Mention’을 수상했다. 작년에는 전주 기린 미술관에서 두 번째 개인전 ‘EYE CANDY Ⅱ’, 미국 국립 항공 우주 박물관 등에서 전시회도 개최했다.
양혜령은 만 13세에 버지니아 주 쉐난도 벨리 아카데미(Shenandoah Valley Academy)에 입학하며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았다. 이후 인디애나 대학교 블루밍턴 캠퍼스(Indiana University at Bloomington)에서 저널리즘을 배웠지만, 1년 뒤 미술을 전공할 것을 결심했다. 반년간 포트폴리오 준비에 매진한 그는 2009년 미국 명문 예술 대학인 아트 센터 칼리지 오브 디자인(Art Center College of Design)에 입학, 엔터테인먼트 디자인(Entertainment Design)을 전공했다.
현재 양혜령이 재직하고 있는 스미스소니언 항공 우주 박물관은 워싱턴 D.C.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 중 하나로 연 1,0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곳이다. 또한 스미스소니언 재단이 운영하는 17개 박물관 중 가장 인기가 많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스미스소니언 항공 우주 박물관은 2층으로 구성된 현대식 단독 건물로, 1층과 2층 모두 합쳐 23곳의 갤러리가 있다.
그는 현재 2018년 12월에 시작해 2025년에 완료될 예정인 동 재개발 프로젝트에 매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재개발에 필요한 사적 기금 2억 5,000만 달러를 위해 기부자 및 회사 등에 보여줄 일러스트를 작업하고 있다.
양혜령은 “콘셉트 아트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분야 중 하나”라고 전했다. 또한 “콘셉트 아티스트는 영화, 게임, 엔터테인먼트 등 인간의 일상 외에도, 가상 현실세계 혹은 상상 속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것이 도전이자 매력”이라며 직업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다. 특히 양혜령을 매료시킨 건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콘셉트를 상상하고 이를 실사화하는 과정에서는 일상의 모든 요소가 배경이자 영감의 원천이 된다는 점”이다. 그는 “콘셉트 아티스트로서 장기적으로는 국내에서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애니메이션 영화를 프로듀스해 국내 엔터테인먼트ㆍ문화ㆍ콘텐츠 시장에 기여하는 것”이 꿈이자 목표라고 말했다.
/김동호 기자 dongh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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