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길 북한 주이탈리아 대사대리가 잠적한 후 미국 또는 영국으로의 망명을 시도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워싱턴 외교가에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새해 들어 친서까지 주고받으며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가운데 이번 일이 북미 간의 외교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북미가 모두 조 대사대리의 망명설에 대한 언급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는 것에 비춰볼 때 북미정상회담의 판이 흔들릴 상황으로까지는 번지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5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최대 일간 코리에레델라세라에 따르면 조 대사대리는 지난해 9월 귀임 통보를 받은 후 제3국으로 도피했다가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왔고 현재 이탈리아 정보당국의 보호를 받으며 서방국가 망명 등의 해법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현지언론은 그가 미국 또는 영국으로 벌써 건너갔을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북한 특수요원들이 그의 잠적을 인지한 후 추격전을 벌였으나 체포에는 결국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대사대리가 평소 북한 개방에 관심이 많았고 외교 요충지인 이탈리아에서 근무했다는 점에 비춰볼 때 그가 한미 정보당국의 구미를 당길 다수의 북한 관련 정보를 보유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미 정보당국 등은 그러나 이에 대한 언급을 극도로 자제하며 신중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미 국무부 역시 조 대사대리의 미국 망명설에 대해 ‘답변할 수 없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이런 가운데 미국 언론들은 과거 북한 대사가 미국으로 망명한 후 북미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졌던 사례 등을 소개하며 이번 사건이 북미 협상에 미칠 파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1년간 전례 없는 외교적 손길을 내민 뒤 국제적 지위를 가진 합법적 정상으로서 위상을 다지려던 북한의 김정은에게 굴욕적 일격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다만 현재로서는 이번 사건이 북미 협상에 직접적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봉합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조 대사대리가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한국이나 미국이 아닌 영국 등으로 망명을 추진하고 있다는 이탈리아 현지언론의 보도가 나오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탈리아와 미국의 정보당국이 ‘절충점’을 찾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AP통신은 북한 역시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에 대해 ‘인간쓰레기’ 등 원색적인 비난을 해왔던 것과 달리 직접적인 비판을 최대한 자제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다만 향후 북미 협상의 흐름에 따라 이 문제가 ‘복병’이 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지금처럼 협상의 답보 상태가 이어질 경우 조 대사대리 사건이 인권 문제와 연계돼 북한과 미국을 동시에 압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외교가의 분석이다.
/윤홍우·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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