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에 대한 최종 진단은 암세포를 확인함으로써 내려진다. 암세포는 육안으로는 볼 수 없기 때문에 암이 의심되는 병소에서 조직을 채취해 현미경 관찰로 암세포를 판별해야 한다. 즉 암 조직을 얻는 것이 필수적인데 이를 위해 시행하는 것이 조직검사다.
폐암의 경우 기관지내시경을 이용하거나 갈비뼈 사이로 가늘고 긴 침을 폐에 찔러넣어 암 조직을 채취한다. 생검(biopsy)이라고 하는데 이 과정에서 출혈·기흉·감염 등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즉 피를 보는 침습적 검사방법인 것이다. 환자 입장에서는 그 누구도 하고 싶지 않은 검사법이지만 폐암 진단을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게 현실이다.
최근에는 표적항암제·면역항암제 등을 처방하기 위해 더 많은 암 조직이 필요하다. 항암제에 내성이 생긴 환자의 경우 한번에 그치지 않고 다시 조직검사를 시행하는 재조직 검사가 필수적이다. 최적의 치료를 위해서는 충분한 암 조직을 얻는 것이 필수적 요소로 등장했다. 폐암은 조기 발견이 어려워 대부분 3~4기에 진단되는데 채취한 암 조직이 부족한 게 항상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조직검사 없이는 암을 진단할 수 없는 것일까. 암세포는 주변 세포들은 물론 원격전이 부위의 세포들과도 활발히 교신함으로써 생존력을 획득한다. 더 나아가 다른 장기로의 영토 확장을 위해서도 전이를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세포들이 상호 간에 교신할 때 중요한 생체신호를 전달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이러한 전령 역할을 수행하는 게 세포외소포체다. 세포외소포체는 수십~수백㎚ 크기의 입자로 이중막 구조 안에 DNA·RNA와 같은 핵산과 단백질들이 안정 상태로 잘 포장돼 세포 밖으로 분비된다. 주변 세포들은 이들을 흡수해 보따리 안을 풀어놓음으로써 암세포의 메시지가 전달되는 ‘택배’ 기능이 수행된다.
정상 세포들도 정상적인 생리적 기능을 위해 세포외소포체를 분비하지만 암세포는 훨씬 많은 양을 분비한다. 특히 암세포 특이적인 세포외소포체를 분비해 혈액·림프 순환을 통해 우리 몸의 모든 체액에 떠돌게 한다.
따라서 혈액·소변·타액·복수·흉수나 기관지 폐포(허파꽈리) 세척액 등 우리 몸의 체액에서 암세포 특이적인 세포외소포체를 분리해 암 유전자를 분석·진단하는 ‘액상생검(liquid biopsy)’은 조직검사 없이 암을 진단하고 암의 유전적 특성을 확인하는 혁신적 암 진단방법이 될 수 있다. 세포외소포체는 이론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액상생검의 시료다.
최근 혈액·소변·타액·흉수나 기관지 폐포(허파꽈리) 세척액 등과 같은 우리 몸의 체액에서 세포외소포체를 분리하고 그 안에 존재하는 RNA와 DNA 같은 핵산이나 단백질을 분석해 암 진단을 하려는 연구가 특히 폐암 분야에서 매우 활발하다. 암세포에서 떨어져나온 순환종양DNA(circulating tumor DNA·ctDNA)를 혈액에서 분리해 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EGFR) 유전자 변이를 진단하는 액상생검법은 이미 임상에서 사용되고 있다. 쉽고 편리한 방법이지만 죽은 세포들에서 떨어져나오는 ctDNA의 안정성에 문제가 있어 그 민감도가 높지 않다는 결정적 단점이 있다.
반면 이중막 구조의 안정성이 돋보이는 세포외소포체는 암 발생 초기부터 전이에 이르기까지 암세포에서 능동적으로 분비되는 전령 역할을 하는 나노입자다. 암 조직 근처의 체액에서 세포외소포체를 효율적·안정적으로 분리할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이고도 혁신적인 암 진단법을 개발할 수 있다. 조직검사 없이 세포외소포체를 이용해 비침습적으로 폐암을 진단할 수 있는 날이 조만간 도래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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