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은행 노조위원장 출신, 연 매출 3,500억원의 자동차부품 기업 최고경영자(CEO),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건립위원. 김선현(60·사진) 오토인더스트리 대표를 일컫는 표현들이다. 언뜻 서로 잘 어울리지 않지만 ‘독립운동 명문가 후손’이라는 또 다른 수식어가 의문에 대한 해답을 던져준다. 그의 증조부는 임시정부 고문을 지낸 애국지사 김가진(1846~1922년) 선생이다. 조부는 광복군 훈련과장으로 활약한 김의한(1900~1951년) 선생, 조모는 ‘임시정부의 맏며느리’로 불린 정정화(1900~1996년) 선생이고 김자동 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이 부친이다. 김 대표가 임시정부 기념사업에 혼신을 기울이는 이유다.
그는 최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꼭 100년 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꿈꿨던 나라를 세우는 일은 아직도 진행형”이라며 “복지·문화국가 건설을 위한 또 다른 100년을 준비하는 새해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수립 100주년을 맞는 임시정부에 대해 3·1운동으로 우리나라가 처음 세운 민주공화제 정부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일제 침략에 맞선 민초들의 항거의 결과로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위한 정부가 수립된 것은 우리 역사상 가장 뜻깊은 일”이라며 “목숨 걸고 헌신한 독립운동가와 민초를 기리는 일을 100주년 올 한 해만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서울 태평로 오양수산빌딩에 위치한 회사에 ‘임정 기념사업회’ 사무실을 두고 후원하고 있다. 부친이 지난 2003년 기념사업회를 설립한 후 그는 매년 대학생 50~100명을 중국의 임시정부 유적지에 데려가 우리 역사를 바로 보게 하는 대학생 답사단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조모인 정정화 선생을 비롯해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뮤지컬·연극 공연 등 문화사업도 빼놓지 않는다.
김 대표는 겁 없고 담대한 기질을 할머니에서 찾았다. 독립운동 자금을 건네기 위해 압록강을 목숨 걸고 여섯 번이나 건넌 정정화 선생은 1990년 건국훈장애족장을 받았다. “어릴 때부터 33년간 같은 방을 쓴 할머니는 항상 침착하고 품이 큰 분이었어요. 독립운동 당시 무섭지 않았냐고 여쭸을 때는 ‘해야 할 일이니까 그냥 했지’라며 덤덤하게 말씀하셨고 독립운동가 후손과 이웃들을 돌보는 일에 기뻐하셨죠”. 김 대표가 1980년대 호주계 은행 웨스트팩에서 노조를 이끌고 1990년에는 쓰러져가는 자동차부품 업체를 인수해 현재 해외 법인 2곳 등 계열사를 거느린 초정밀부품 그룹으로 성장시킨 바탕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겸손하라’는 할머니 가르침이 있었다는 것이다.
임정 기념사업회의 새해 현안은 기념관 건립이다. 기념사업회의 설립추진 노력과 정부 지원으로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 부지가 마련됐다. 김 대표는 “현재 설계공모에 이견과 혼란이 있는데 대승적으로 협의하면 조만간 해결될 것”이라며 “오는 4월 기공식을 치르고 2021년 완공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의 새해 숙원은 증조부 유해를 우리나라로 가져오는 것이다. 현재 김가진 선생 묘는 중국 상하이 ‘송경령 능원’에 있다. 그는 “과거 우리 정부가 독립유공 서훈에 늑장을 부리면서 유해 국내 봉환도 기한 없이 미뤄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젊은 세대의 역사 인식이 희미해진다는 비판이 있지만 역사적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먼저 분연히 일어난 사람은 순수한 마음을 가진 청년들이었다”며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 그것이 3·1운동·임정 100주년에 모두가 가질 마음가짐”이라고 말했다.
/박현욱기자 hw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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