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역사상 최초로 전직 사법부 수장이 검찰 포토라인에 선 11일 법원 내부는 참담한 분위기였다. 판사들은 양 전 대법원장이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는 모습을 텔레비전 생중계로 지켜보며 “사법부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느냐”는 자조 섞인 말들을 쏟아냈다. 한편으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공개 소환한 검찰에 유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재경 지법의 한 판사는 “사법부의 일원으로서 전 수장이 조사받으러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참담하고 마음이 먹먹하다”며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도 “참담한 심정”이라며 “수사를 안 할 수야 없겠지만 사법부의 상징적인 인물인 전직 대법원장을 굳이 이런 식으로까지 조사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검찰 수사에 불만을 드러냈다. 재경 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탈탈 털듯이 먼지떨이 수사를 했는데 실제 처벌할 만한 사안이 밝혀진 건 별로 없는 게 사실 아니냐”며 “세월이 지난 뒤 ‘사법 파동’ 등의 이름으로 기억되고 상처가 남지 않을까 싶다”고 우려했다.
판사들은 양 전 대법원장의 조사를 끝으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가 이른 시일 내 마무리되길 바랐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법원 내부의 갈등이 봉합되길 바라는 마음도 내비쳤다. 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다행히 양 전 대법원장이 다 말씀하겠다고 하니 어떻게든 사건이 마무리되길 바란다”며 “조속히 상황이 매듭지어지고 법원도 정상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다만 법원 내 일부는 검찰 출석에 앞서 끝내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강행한 양 전 대법원장을 두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재경 지법의 한 판사는 “사법부 구성원에게는 엄청난 부담인데 기어이 대법원 앞에서 회견하는 모습을 보니 이해할 수가 없다”며 “오늘 본인이 책임을 지겠다고 하셨는데 진작에 그런 모습을 보이셨으면 얼마나 좋았겠냐”고 비판했다. 재경 지법의 한 부장판사 역시 “굳이 대법원에 와서 기자회견 하는 걸 보니 과연 대법원장감이었는지 의문스럽다”며 “대체 누구의 조언을 받고 저러는 것인지 속내를 모르겠다”고 성토했다.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도 “법리나 사실관계에서 다퉈볼 만한 게 많으니 당당하게 임하시면 좋을 것 같은데 지금 상황은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많이 주고 있는 게 아니냐”며 양 전 대법원장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박원희 인턴기자 whatamov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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