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수장으로서 헌정 사상 처음으로 검찰에 소환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끝내 검찰 ‘포토라인’에 서지 않았다. 양 전 대법원장은 전직 대통령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유력 정치인들이 거쳐 간 포토라인을 거부하며 검찰의 사법부 수사에 대한 ‘무언의 항의’를 표시했다. 대신 그는 이례적으로 자신의 친정 격인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의혹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11일 직권남용 등 혐의를 받는 양 전 대법원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했다. 사법부의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진 지 22개월 만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정문 앞에서 “법관들이 많은 상처를 받고 여러 사람이 수사당국으로부터 조사까지 받은 데 대해 참으로 참담한 마음”이라며 “이 모든 것이 제 부덕의 소치이고 모든 책임은 제가 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부당한 인사 개입이나 재판 개입이 없었다고 생각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건 변함없는 사실”이라며 결백을 주장했다. 5분가량의 회견을 마치고 서울중앙지검으로 이동한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 포토라인을 무시하고 단 10초 만에 이곳을 지나쳐 조사실로 향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개입과 법관 사찰 및 인사 불이익, 비자금 조성 등 40여개의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추가 소환조사를 진행한 뒤 구속영장 청구 등 신병처리 방향을 결정할 방침이다.
/이재용기자 jy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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