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지난달 1일 합의한 90일 무역 휴전 협상이 반환점을 도는 가운데 여러 돌발 변수들이 발생해 중국 정부에 부담이 되고 있다. 지난주 베이징에서 열린 차관급 협상에서 미국산 대두 수입 확대 등 긴급한 현안에 합의를 이뤄 양국 간 무역긴장이 완화되는 듯 보였지만 지난해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면서 화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기 때문이다. 특히 다국적기업의 중국 신용카드 시장 진출 제한 등 미국이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비무역 장벽이 여전히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남은 무역협상이 난항을 거듭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 정부가 14일 공개한 해관총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대미무역 흑자는 전년 대비 17% 증가한 3,233억2,000만달러를 기록해 사상 최고 기록을 다시 썼다. 대미 수출이 11.3% 늘었지만 수입은 0.7% 증가하는 데 그쳤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대중 무역적자를 줄이겠다며 지난해 3월 중국과의 관세 전쟁을 벌였지만 이번 무역 지표에서 오히려 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이는 미국이 관세 인상에 본격 나서기 전에 중국의 무역업자들이 선적량을 미리 앞당긴 결과라는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금융당국이 규정을 어기고 미국 신용카드사들의 위안화 결제를 의도적으로 막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중국 인민은행이 비자와 마스터카드의 위안화 결제 승인 절차를 1년 이상 지연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세계무역기구(WTO)가 2012년 7월 중국이 해외사들의 중국 결제시장 진출이 불공정하게 방해했다고 판결하자 인민은행은 2017년 6월 외국사들의 위안화 청산 결제 사업을 승인하는 절차를 고지했다. 한 달 뒤 비자가 위안화 결제 사업 승인을 요청했고 2017년말에는 마스터카드도 동참했다. 하지만 인민은행은 사업 신청 90일 내에 승인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규정을 어기고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FT는 “다른 카드사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아멕스)가 지난해 11월 50대 50 합작 조건으로 위안화 결제 사업 승인 받았다”면서 나머지 두 회사는 합작 방식을 따르지 않아 중국 정부로부터 미운털이 박혔다고 설명했다.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이 캐나다에서 구금 후 풀려나면서 일단락되는 보였던 화웨이 갈등도 무역협상을 막는 강력한 변수가 되고 있다. 지난주 폴란드 정보기관이 중·북부 유럽 판매 책임자인 왕웨이징을 간첩 혐의로 체포하면서 미국이 화웨이 봉쇄에 유럽을 끌어들이는 모양새다. 특히 폴란드 사이버당국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공공기관의 화웨이 제품 사용을 금지하도록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화웨이 불매 운동이 확산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 환구시보는 14일 사평에서 “지난주 금요일(11일) 폴란드 정보기관이 화웨이 간부 체포 소식을 전하고 이를 미국 중앙정보국(CIA), 연방수사국(FBI), 국무부 등이 리트윗을 했다”면서 “미국은 중국 회사가 경쟁에서 앞서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로 이런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고 반발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계 다국적 미디어사인 비아콤이 중국 정부의 방해를 이유로 현지 사업 지분을 대거 처분하려는 것으로 드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다. WSJ은 이날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1990년대 중국에 진출한 비아콤이 사업 확장에 어려움을 겪고 중국 투자자에 지분을 넘기려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버, 휴렛팩커드(HP), 맥도날드에 이어 비아콤마저 보이지 않는 무역장벽을 이기지 못해 중국 투자자에게 지분을 대거 넘기려 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대미흑자 증가, 여전한 비관세 장벽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 내 강경파 반발을 불러 협상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과 미국의 집계 방식 차이 때문에 무역 흑자액이 서로 다를 수는 있다”면서도 “어떤 집계에서든 중국의 무역흑자가 증가했다면 이는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관세 압박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강경파들에게 명분을 제공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창영기자 k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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