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5년 겨울에 니콜라스 네그로폰테가 서울에 왔다. ‘디지털이다(being digital)’라는 주제로 출판기념회를 열었는데 행사장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그는 “미래는 원자(atom)가 아니라 비트(bit)가 지배한다”고 했다. 25년이 지난 시점에 되돌아보면 그의 예언은 정확했다. 1997년 아마존의 최고경영자(CEO) 제프 베이조스는 주주들에게 “오늘은 인터넷에서의 첫날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그 날 이후 세상은 크게 변했다. 월마트가 무시했던 온라인 서점 아마존은 2019년 현재 세계 최대의 유통업체로 부상했고 월마트를 멀찍이 추월했다. 인공지능(AI)·클라우드 등 가장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지털 거인으로 변신했다.
올해 우리 중소기업들은 멈칫거릴 여유가 없다. 지금이라도 20여년 전 네그로폰테와 베이조스가 강조했던 디지털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오늘은 디지털 혁신의 첫날입니다”라고 선언해야 살아남는다. 국내외 경영환경의 어려움, 대중소기업 간의 커지는 격차를 감안한다면 대안은 없다. 전통 제조업의 부진과 구조개혁, 오프라인 자영업과 내수의 침체, 인건비 등 원가상승 압력도 디지털 혁신을 강요하고 있다. 이런 환경하에서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여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변신하고 대기업으로 퀀텀점프를 하려면 디지털 혁신 이외에 묘책은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8년도 자료에 따르면 우리 중소기업의 디지털화 수준은 2016년 기준 36개국 가운데 28위에 그치고 있다. 글로벌 혁신 네트워크와의 연결성과 빅데이터 활용 비율도 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며 중소기업의 생산성은 대기업 대비 30% 수준에 불과하다.
디지털 혁신이란 기업의 핵심 프로세스, 고객과의 접점, 제품 및 서비스 등 경영 전반에 걸쳐 정보통신기술(ICT)의 적용을 통해 비즈니스모델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벤캇 벤카트라만의 ‘디지털 매트릭스’는 디지털 세계에 참여하는 세 가지 유형의 참가자(기존 기업, 기술기업, 디지털 거인)와 세 가지 유형의 변화(경계에서의 실험, 핵심에서의 충돌, 뿌리에서의 재창조)가 만들어내는 아홉 가지 매트릭스에 적합한 원칙과 조치들을 제안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세계에 못 들어가고 있는 수많은 ‘기존 기업’들에, 성공의 덫에 빠져 있는 기업인들에게 꼭 필요한 조언을 하고 있다. 미국 농기계업체 ‘존디어’, 프랑스 ‘아코르호텔그룹’, 제너럴일렉트릭(GE)·넷플릭스 등의 디지털 혁신사례가 소개돼 있다. 디지털 미래에 기업들의 규모는 중요하지 않다. 서로 다른 조직들끼리 힘을 합치고 디지털 기술의 힘을 활용해 고객들이 원하는 가치를 신속하게 전달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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