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교대역 지하통로 기둥에는 요즘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각종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광고가 즐비하다. 이혼·관세·부동산·형사 등 전담 분야와 함께 변호사들의 얼굴과 이름이 걸려 있어 서울중앙지방법원과 고등법원을 오가는 의뢰인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오밀조밀 모여 의뢰인에게 이름을 알리던 서초동 변호사 간판이 앱을 타고 이제는 변호사의 사진과 프로필까지 내거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제도 도입 이후 법률 서비스 시장에 변호사 공급이 포화상태에 달하면서 개업은 물론 로펌 소속 변호사에게도 홍보·광고는 필수인 시대가 됐다.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의뢰인을 기다리는 방식을 벗어나 적극적으로 변호사를 알리는 서비스로 변한 셈이다. 변호사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홍보 채널은 온라인 포털 사이트의 검색 키워드 광고다.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 근처에 개업한 10년 차 변호사 김형주(44·가명)씨는 “경매입찰 방식이다 보니 광고비로 월 1,500만원 정도는 지출해야 포털사이트 웹페이지 상단에 노출돼 효과를 볼 수 있다”며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유튜브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채널을 추가로 활용하려고 하면 한 달에 홍보 비용으로만 2,000만원이 든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그나마 개업한 지 10년이 됐고 사건이 끝난 의뢰인이나 지인들로부터 소개가 들어오니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로스쿨 졸업 후 로펌이나 회사에 입사하지 못해 개업하는 젊은 변호사들은 빚 없이 광고비를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고 전했다.
같은 비용으로 수임 효과를 높이기 위해 포털 사이트의 블로그나 카페 등에 올라오는 질문에 답글을 달아주는 대행업체를 따로 고용하기도 한다. 온라인 바이럴(입소문) 마케팅 업체들은 변호사들을 대신해 최근 판례들이나 개정된 법 규정, 자주 올라오는 질문, 법 관련 기사 등을 모아 블로그에 올려 콘텐츠 관리를 해준다. 운영유지비는 포함사항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00만~200만원 내에서 책정된다.
이 때문에 최근 개인 변호사 사무소에서는 사무직원을 채용할 때도 온라인 콘텐츠를 잘 만들거나 SNS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인재를 선호한다. 온라인 마케팅 대행업체에 지출할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웹페이지뿐만 아니라 ‘앱’ 광고시장에서도 경쟁이 치열하다. ‘로톡’ ‘나홀로소송 지원연구소’ ‘변호사님닷컴’ ‘우리동네변호사’ 등 변호사들이 모여 만든 법률 서비스 앱은 하나둘 증가하는 추세다. 웹페이지상 허위 광고가 많고 후기도 믿을 수 없어 하는 의뢰인들이 많아지자 틈새시장을 노린 전략이다. 앱은 설치하기만 하면 기본적으로 변호사들의 전문 분야 등의 정보를 알 수 있고 의뢰인들의 실제 상담 내역이 남겨져 있어 상대적으로 검증 가능하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변호사들이 본인의 이름을 걸기 때문에 좀 더 믿을 만하다는 평도 있다. 하지만 변호사 업계에서는 이마저도 결국에는 ‘광고비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본다.
관련기사
무한경쟁 시대에서 홍보·광고비는 계속 증가하는데 지출이 수임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노출된 광고만으로는 변호사의 실력을 가늠할 수 없게 되자 의뢰인들은 소위 ‘변호사 쇼핑’을 다니며 정보를 얻어낸다.
중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의뢰인들은 광고를 보고 열군데 이상을 돌아다니면서 무료상담을 받은 후 가장 저렴한 곳을 찾는 경향이 강하다”며 “의뢰인이 사건의 일부를 이야기하길래 중요 법리를 검토해줬더니 그 내용을 가지고 다른 변호사를 찾아가 새로운 내용을 묻더라”고 토로했다. 일부 의뢰인들은 이를 이용해 무료상담을 받은 내용으로 본인이 직접 소송을 진행하기도 한다. 광고비 지출 외에 다른 대안은 없고 광고를 보고 찾아온 의뢰인들은 무료상담에 그쳐 변호사들의 실제 사건 수임률은 계속 줄어드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대한변호사협회가 지난 2017년부터 ‘변호사 중개센터’를 운영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지만 효과는 미미해 유명무실하다는 평이 많다. 대한변협의 한 관계자는 “주로 해당 사건과 관련한 전문성을 갖춘 10년 차 이하의 젊은 변호사를 대상으로 소개해준다”며 “연결을 해줘도 수임을 할지 말지는 결국 의뢰인과 변호사의 자율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중개센터에 접수된 202건 중 총 133건의 중개가 성사됐으나 수임까지 이어진 것은 7건에 불과하다. 2017년에는 접수된 145건 중 92건이 중개됐고 8건만이 실제 수임 건으로 잡혔다.
올해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선거에 출마한 안병희 변호사는 “과다한 광고비는 결국 의뢰인들의 부담으로 돌아가거나 변호사들의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서울변회 등 변호사 단체에서 공공목적의 앱을 만들어 과다한 광고비 지출을 막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 변호사는 이어 “법률 서비스 시장의 신뢰를 높여 의뢰인과 변호사를 효율적으로 연결해 모두의 이익을 지켜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백주연기자 nice89@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