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표현 삭제에 대해 국방부는 최근 달라진 남북관계를 고려했다고 밝혔다. 세 차례에 걸친 남북정상회담 이후 긴장완화와 신뢰구축 노력이 진행되는 마당에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주장이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북한이 우리에게 군사적 위협을 가하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평화를 위해 협력해야 할 대상인 것은 맞다. 하지만 국방부가 이런 정치적 고려까지 해야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안보의식 강화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
남북관계 개선의 조짐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가 안보환경의 근본적 개선으로 연결될 징후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국방부가 분석한 북한군 규모는 128만명으로 우리 군의 2배에 달하고 특수작전군을 별도로 편성하는 등 특수전 능력을 강화했다. 여기에 미국의 비핵화 접근 방식의 변화 조짐이 보이면서 자칫 북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적어도 안보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평화와 화합보다 대립과 갈등의 소지가 더 커졌다.
남북 대치국면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어 언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우리 국군의 전력이 북한보다 열세인 상황에서 모호한 적 개념과 가상의 적 소멸로 안보의식까지 흐릿해진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방백서에 ‘적’이라는 표현이 빠졌다고 준비태세까지 마냥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군은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구체적인 적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하고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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