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규제를 기회로…한국적 디자인 담아내=이 대표에 따르면 이 호텔은 설계만 2년이 걸린 프로젝트였다. 우선 입지부터가 쉽지가 않았다. 인근에 사도세자와 정조대왕의 능인 융건릉이 위치한 문화재 인근 지역인 만큼 높이 제한을 받았다. 게다가 부지에 따라 층수 제한이 달랐다.
이 대표는 “보통 문화재 경계선에서부터 경사 각도로 조절을 하는데 그러다 보니 땅의 범위에 따라 어디까지는 3층, 어디까지는 4층 이런 식으로 됐다”면서 “이를 바꾸려면 별도의 건축 심의를 받아야 하는 만큼 정해진 범위 안에서 작업을 하고자 했다”고 털어놓았다.
층수 규제를 넘어 곳곳에 한국적인 디자인을 담아내며 오히려 입지적인 조건을 부각한 것도 특징이다. 푸르미르는 청룡의 순우리말이다. 관광객들이 호텔에 들어서는 입구부터 동양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동양화에 등장하는 단골 소재인 소나무부터 마당을 중심으로 한 평면 배치가 모두 그렇다. 이뿐 아니라 지붕의 조형, 건물의 입면상 비례, 재료 사용 등이 한국의 전통가옥을 연상케 한다. 실제 호텔은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인정받아 2017년 경기도건축문화상 사용승인(비주거) 부문에서 특별상을 수상했다.
◇공간 활용을 위해 탄생한 외관도 눈길=한국적 정서를 담아낸 것 외에 긴 꼬리를 가진 고리 모양의 건물 외관도 눈길을 끈다. 이 독특한 외관은 3~4층의 높이 제한 속에서 최대한 많은 객실을 풀어내고자 탄생한 결과물이다. 일반적인 호텔이라면 건물 저층부에 대형 공간이 필요한 컨벤션·웨딩홀 등을 배치하고 고층부에 숙박을 위한 객실부를 집중시킨다.
반면 푸르미르 호텔의 경우 높이 제한 때문에 객실을 위로 올릴 수가 없었다. 객실을 위로 올리는 대신 옆으로 늘어뜨리다 보니 고리 모양이 탄생했다. 이 대표는 “객실 수를 확보하기 위한 방법이었지만 고리 모양의 개방된 평면은 기분 좋은 공간감을 갖게 한다”면서 “사실 오픈 공간의 정점부 지붕에 채광과 환기가 가능한 천창이 있었는데 관리상의 요구로 삭제된 점은 아쉽다”고 밝혔다.
여기에 나름의 입체감을 추가하기 위한 장치들도 심어놓았다. 1층 로비와 그 옆에 있는 카페는 언뜻 보면 같은 층에 있지만 실제로는 중간에 계단이 있어 로비에서 카페로 가기 위해서는 반 층을 더 내려가야 한다. 카페에 앉아 천장을 바라봐도 천장 높이가 다양해 독특한 공간감을 자아낸다.
객실이 중심인데다 행사장과 예식장·커피숍·전문식당 등이 섞여 있는 호텔 건물의 특성상 관광객과 직원의 동선을 구분하는 작업도 흥미로웠다. 음식 서비스의 경우 식자재의 반입, 검수, 냉동 보관, 식자재 1차 처리 등의 동선이 섞이지 않아야 하고 서빙하는 동선과 손님 동선이 완벽하게 구분돼야 했다. 더군다나 사용자의 이용시간이 24시간이고 이용목적도 다양하다. 이 가운데 보안, 피난, 장애 없는 사용자의 순환 동선도 해결해야 했다. 이 대표는 “호텔 특성상 복잡한 동선을 구분하는 것이야말로 복잡한 방정식을 푸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사용자 위한 건물 짓는 것이 목표=이 대표가 푸르미르 호텔의 설계를 맡게 된 데는 우연한 계기가 숨어 있다. 정조대왕에 관심이 많던 이 대표는 2013년 ‘수원 화성 도시풍경 소묘전’을 개최했고 그즈음 푸르미르 호텔의 현상설계가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응모하게 됐다. 이 대표는 “현상설계 당시부터 아이디어가 나왔던 것은 아니지만 화성에 관심이 있다 보니 추후 지역적인 코드를 활용할 수 있었다”면서 “사업주와 함께 일반 관광객을 어떻게 끌어올 것인가에 대해 얘기한 결과 문화재 인근 지역으로서의 특징을 살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리츠칼튼호텔, 중국 해남 868 타워스, 하비에르 국제학교, 스타시티 영존 등의 설계를 맡아온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용자를 위한 건축을 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건축은 건물을 지으려는 건축주에 의해서 시작되지만 주택을 제외한 건물은 일반적으로 건축주가 아닌 일반 시민이 사용자”라면서 “건축주, 일반 시민, 그리고 공공성과 역사 문화적 가치를 판단하는 전문가 등의 이해관계를 조정해 사회적인 공공재를 설계하는 것이 건축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이주원기자 joowonmail@sedaily.com 사진제공=비에스디자인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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