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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코시 근로정신대·강제징용 피해자 4년만의 항소심서 승소

“1인당 8,000만∼1억원 배상하라” 1심 판결 유지

변호사 “지난해 3명 사망…재판 지연, 사법부 책임”

서울고법 민사12부(임성근 부장판사)는 18일 근로정신대·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 등 27명이 후지코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해자 1인당 8,000만∼1억원을 배상하라”는 1심 판결을 유지했다. 사진은 지난 2014년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후지코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 선고가 끝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연합뉴스




1940년대 일본 군수기업인 후지코시에 강제동원됐던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2심에서도 회사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을 받았다. 서울고법 민사12부(임성근 부장판사)는 18일 근로정신대·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 등 27명이 후지코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해자 1인당 8,000만∼1억원을 배상하라”는 1심 판결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근로정신대원으로 지원한 원고들은 당시 대부분 10대 초반이었으나 위험한 작업에 종사했고, 70년이 넘도록 보상이나 배상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또 “후지코시와 일본이 나이 어린 원고 등이 믿고 따를 수 있는 교사 등 연장자를 동원하거나,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등 기망·회유·협박 등 수단을 동원해 근로정신대에 지원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앞서 일본 법원이 후지코시의 불법행위를 인정하면서도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한국인 개인의 청구권은 포기됐다”며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판결이 국내에서까지 기판력(효력)을 갖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일본 법원은 일본의 식민지배가 합법적이라는 인식 하에 당시 시행된 메이지헌법 등에 근거해 후지코시의 책임을 판단했다”며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대한민국의 헌법과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위반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일청구권 협정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포함돼 있다는 후지코시 측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2003년 일본에서 소송을 제기해 패소했다는 것만으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하는 장애사유가 소멸했다고 볼 수 없다며, 소멸시효도 지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1928년 설립된 후지코시는 태평양전쟁 당시 12∼18세 한국인 소녀 1,000여명을 일본 도야마 공장에 끌고 가 혹독한 노동을 시켰다. 피해자들은 교육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말을 믿고 지원했지만 군대식 훈련과 매일 10∼12시간의 노동에 시달리며 급여도 받지 못했다. 열악한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외출이 제한되고 감시당하기도 했다.



피해자들은 2003년 후지코시를 상대로 도야마 지방재판소에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재판소는 한일청구권 협정을 근거로 패소 판결했다. 일본 최고재판소도 2011년 이들의 상고를 기각했다. 그러나 2012년 5월 한국 대법원이 신일본제철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개인 청구권이 소멸됐다고 볼 수 없고, 일본 법원 판결의 국내 효력도 인정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자 이후 국내 법원에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이와 같은 대법원의 판결 취지에 따라 후지코시가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어진 항소심은 앞선 신일본제철 상대 소송의 최종 결과를 기다렸다. 그러나 파기환송심을 거쳐 돌아온 재상고심의 결론을 대법원은 5년간 차일피일 미뤘다. 최근의 검찰 수사로 이렇게 결론이 미뤄진 배경에는 대법원과 박근혜 정부 청와대 사이에 ‘재판거래’ 의혹이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결국 지난해 10월에야 대법원은 최종 승소 판결을 했다.

4년간 기다린 항소심 재판부는 이와 같은 대법원 판단에 따라 후지코시 측의 항소를 기각했다.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이희자 공동대표와 원고 소송대리를 맡은 임재성·김세은 변호사 등은 서울 서초구 김영빌딩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판결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냈다. 이 대표는 “원고들은 2003년부터 일본에서 후지코시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가 패소했다”며 “이번 판결로 (피해자들의) 마음의 상처가 조금이라도 치유됐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임 변호사는 ‘재판거래’로 재판이 장기화한 의혹을 두고 “이번 항소심 판결을 기다리면서 지난해에만 (피해자) 할머니 세 분이 돌아가셨다”며 “사건 결과를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피해자들에게 사법부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서영 인턴기자 beatri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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