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주에서 흔히 듣는 말 중 하나가 ‘텍사스는 모든 것이 크다(Everything is bigger in Texas)’이다. 땅도 넓고 사람들의 배포도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텍사스주의 면적은 남한의 7배이고 인구와 경제력은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크다. 최근에는 휴스턴·오스틴·댈러스 등 주요 도시로 젊은 층이 급격히 유입되면서 미국에서 가장 높은 인구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심지어 종교적으로도 신도 수 1·2위의 대형 교회가 나란히 휴스턴에 자리 잡고 있어 ‘텍사스는 신(神)도 크다’는 농담이 있다.
이러한 텍사스를 이룬 일등공신이 바로 텍사스의 에너지산업이다. 19세기 말 시작된 텍사스의 석유개발 붐은 뉴욕의 금융과 함께 20세기 미국의 발전을 이끄는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왔다. 2차 대전 전후 중동의 석유개발로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주도권을 넘겨줬지만 2000년대 후반 지하 퇴적 셰일층에 갇혀 있는 석유가스를 추출하는 기술(fracking)이 상용화되면서 텍사스는 제2의 에너지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텍사스 주지사 출신인 릭 페리 에너지부 장관의 적극적인 지원도 에너지산업의 부흥에 일조하고 있다.
텍사스의 경제 중심인 휴스턴에는 세계 최대의 에너지기업인 엑손모빌을 필두로 5,000여개의 크고 작은 에너지기업들이 밀집해 있어 그야말로 세계 에너지 수도라고 할 만하다. 이들은 텍사스에서 미국 석유의 41%, 천연가스의 4분의1을 생산하면서 미국 에너지산업을 이끌고 있다. 이에 힘입어 미국은 이미 지난 2012년 세계 천연가스 1위 생산국이 됐고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산유국의 자리에 올랐다. 미국의 부상은 OPEC의 시장지배력을 약화시키고 국제 에너지 안보 및 패권 구도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텍사스를 중심으로 한 미국과의 에너지협력은 우리 기업의 새로운 사업기회 창출은 물론 우리나라의 중장기적인 에너지안보 측면에서 새로운 의미를 가진다.
우리 기업들은 이미 미 중남부 지역에 활발히 진출해 있다. 한국가스공사가 재작년 6월 연 20억달러 규모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을 개시했다. 파나마운하 확장에 따른 운송비 절감, 유연한 계약조건 등은 미국산 LNG 도입에 유리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는 10년 전부터 걸프만에서 해상 시추 플랫폼을 운영해왔고 SK이노베이션 등 민간기업들도 셰일가스 개발에 도전장을 내밀고 글로벌 에너지기업으로의 기술력과 사업 노하우를 축적해가고 있다. 석유화학 쪽에서는 롯데케미칼이 30억달러 규모의 에틸렌 생산공장을 조만간 완공하고 상업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에너지는 산업의 근간이다. 우리나라는 94%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안정적인 에너지 확보는 우리의 생명선을 확보하는 것이다. 지난 세기 선진국들이 독점해온 세계 에너지시장에 도전하는 것은 우리 경제의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는 일이기도 하다. 중동에 치우친 수입선을 다양화하고 글로벌 에너지 유통에 지분을 확대하고 향후 남북관계 개선으로 중러와의 에너지 연계가 이뤄질 경우 우리나라는 동북아 에너지허브로의 역할도 내다볼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우리의 동맹국인 미국과의 에너지협력은 에너지안보는 물론 양국 간 교역 확대와 균형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며 경제적 차원을 넘어 정치안보 측면에서도 전략적 의미를 가진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한미동맹 강화에도 기여할 것이다.
텍사스는 풍력·태양열·바이오연료 등 재생에너지 분야에서도 훌륭한 입지조건을 갖고 있어 협력 잠재력이 크다. 또 에너지 분야 세계 최고 권위의 라이스대 산하 베이커연구소와 유수 공과대학의 에너지 전문인력과 연구 인프라가 탄탄하다. 올 1월에는 우리 에너지경제연구원과 베이커연구소가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산학연 에너지협력의 기본 틀도 마련됐다. 한미 에너지협력은 양국 간 경제협력의 새로운 블루오션이다. 우리 기업들의 미래를 내다보는 과감한 도전이 계속되기를 기대해본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