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돌도 되기 전에 남편과 헤어지고 난 뒤 전 남편에게 양육비를 달라는 소송만 스물일곱 번 했다. 양육비 이행명령, 미지급으로 인한 감치(구치소나 유치장 등에 일정 기간 구금) 명령이 반복됐지만, 소용없었다. 감치를 집행하기 위해 주민등록상 주소지로 찾아가면 “그런 사람 안 살고 있다”는 말만 되돌아왔다. 양육비를 받지 못해 소송을 계속하는 사이 아이는 어느새 21살이 됐다. 지난해 12월 31일 양육비 이행 명령 불이행에 따른 감치를 요구한 소송에서 재판부는 이제 아이가 성인이 된 점 등을 들어 기각시켰다. 다음날인 새해 첫날 청와대 앞으로 가 허리까지 기른 머리를 삭발하고 외쳤다.
“양육비 문제는 아이의 권리이자 생존권입니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전 배우자 등을 아동학대로 처벌해주세요”
강민서 양육비해결모임 부대표의 이야기다. 강 대표는 최근 서울 광화문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올해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국가가 반드시 양육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양육비 해결모임은 전 남편, 전 아내로부터 양육비를 받지 못해 피해를 본 부모들이 모인 시민단체다. 양육비를 주지 않는 ‘나쁜 아빠’, ‘나쁜 엄마’의 이름과 거주지, 다니는 회사, 얼굴 사진 등을 인터넷에 공개해 화제가 됐다. 나쁜 엄마, 나쁜 아빠가 다니는 직장 앞에서 양육비를 달라며 시위를 진행했고 전국 광역시를 돌며 사진 전시회도 펼쳤다.
명예훼손을 무릅쓴 운동 방식이지만 성과는 컸다. 27개월 된 아이를 키우는 한 회원은 모임을 통해 나쁜 아빠의 신상을 공개한 후 매달 양육비를 꼬박꼬박 받을 수 있었다.
“지난해 9월 모임을 결성해 반년도 안 돼서 66건을 해결했어요. 정부가 세운 양육비이행관리원이 해결한 것보다 높은 속도에요”
모임 활동이 알려지면서 문의도 쏟아졌다. 현재까지 모임에 양육비를 주지 않는 전 남편, 전 아내의 신상을 공개하고 싶다며 1,900여 명이 문의했다. 나쁜 아빠와 나쁜 엄마의 비중이 약 9대 1이었다. 강 부대표는 “미혼모들은 아이를 뺏길까 봐 양육비 이행명령 소송조차 안 하는 경우도 많다”며 “대부분 문의한 사례들은 헤어지고 처음부터 아예 양육비를 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털어놨다.
그만큼 양육비 지급을 위한 제도가 제대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반증했다. 현행법상 채무자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을 경우 법적 소송을 제기해야 양육비를 받을 수 있다. 강 부대표의 경우처럼 법적 소송을 제기해도 채무자가 ‘나 몰라라’하면 달리 방도가 없다.
“어렵게 법정 소송을 진행해도 그 과정에서 또 한 번 상처를 받는 경우들이 많아요. 재혼해서 낳은 자식은 어떻게 키우라고 이혼한 가정의 자녀 양육비를 줘야 하느냐는 말을 듣기도 해요. 양육비 지급을 계기로 자녀와도 자주 만나서 부모로서 역할을 다 해주길 기대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국가가 대신 양육비를 지급한 뒤 채무자에게서 양육비를 회수하거나 국가가 채무자에게서 양육비를 걷어 지급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노르웨이에서는 은행계좌, 부동산 압류, 개인 재산 강제 매각 등의 방법을 동원해 양육비를 국가가 회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채무자가 의도적으로 지급하지 않은 게 확인될 경우 벌금형, 징역형의 처벌을 부과하고 있다. 강 부대표는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채무자의 운전면허 취소, 신상공개와 여권제한 등 조치라도 시행하면 미지급 문제가 줄어들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양육비해결모임의 활동이 알려지면서 올해 이들은 제도 개선을 이루는 게 목표다. 오는 28일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고 법 개정을 위한 이슈화에 나설 예정이다.
“최근에 아이들의 생존권을 위해 양육비를 지급해달라는 안내 문자를 보냈다가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연락을 받기도 했어요. 그래도 활동을 멈출 수는 없어요. 제가 20년 동안 겪었기 때문에 더 그래요. 신상 공개로 양육비를 받아 해결된 분들도 ‘다음 달 되면 또 양육비를 안 주면 어떻게 하지’ 불안해하세요. 운전면허 취소 등 제재를 줘야 양육비 불안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있습니다”
/김지영기자 jikim@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