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의 사기가 중요합니다. 기업인을 존경하는 사회가 돼야 경제가 잘될 수 있고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될 수 있어요.”
김도연(사진·66) 포스텍 총장은 지난 18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가진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신문에서 ‘기업 길들이기’라는 어휘를 볼 때마다 ‘기업은 존경할 대상이 돼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든다”며 안타까움을 털어놓았다.
그는 “기업인의 성취를 인정하고 존경해야 한다”며 “삼성이나 포스코 등의 기업이 얼마나 많은 고용을 창출하느냐”고 반문했다. 기업을 군에 비유하면 군 지휘관의 사기가 중요하듯이 기업인의 사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가업상속 규제 완화도 거론했다. 그는 “1960~1970년대 창업한 중견기업인 가운데 증여·상속에 관해 고민하는 기업인이 많다”며 “이들은 피땀 흘려 일궈왔는데 세금을 징벌적으로 육십몇%나 내야 해 ‘너무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중견기업을 두 번 상속하면 흔적이 없어져 그 전에 팔아버리려 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세계적으로 최고 부자 100명이 세계 인구 절반(40억명)보다 더 많은 부를 지니고 있다. 앞으로 이런 부익부가 심화돼 10명이 그런 부를 갖게 될 것”이라며 “이런 부익부를 억제하기만 하면 산업혁명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기업인이 돈을 벌어 세금을 내고 고용을 창출하는 것을 격려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 먹거리 등 성장동력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앞선 기술력과 튼튼한 조직력, 기업인의 사기’라는 삼박자가 맞아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시에는 전투를 군이 하지만 평시에는 기업이 한다”며 제일 중요한 게 기술력이라고 꼽았다. 하지만 일본 등을 따라잡기도 벅찬데 중국에 바이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신성장 분야에서도 뒤처지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시장은 기업이 잘 안다. 정부가 산업정책을 펼 때 지향하는 바가 다르더라도 기업 등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군에서 육해공군이 따로 움직이면 안 되듯이 기업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와 사가 각자 이익만 추구하면 안 된다. 노노갈등이나 정규직·비정규직 갈등도 있는데 육군도 포병·보병 갈등이 생기면 전쟁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그는 “우리 경제는 럭비로 치면 터치다운 하기 전에 주춤하고 있는 형국이다. 4~5년 전 바이오사를 창업한 저희 포스텍 교수도 ‘36명의 직원 중 6명을 내보냈다’고 하소연하더라”고 말했다.
정부의 중재자 역할도 강조했다. 그는 “스마트폰 등 삶을 바꾸는 파괴적 기술은 기업에서 잉태됐고 정부와 대학은 이에 협력해야 한다”며 “정부가 확실한 미래 비전을 갖고 편견 없이 중재자 역할을 해야지, 한쪽 편을 들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노동개혁도 지지부진하고 승차공유 등 사회적 갈등 조정도 잘 안 되는 현실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 꽃피우기 힘들다는 얘기다.
그는 “정권이 바뀌면 1~2년 내에 많이 바꿀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며 “국민도 좀 더 느긋하게 기다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감옥에서 27년을 보낸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나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유머를 잃지 않았는데 우리 정치 지도자들도 유머를 가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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