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제대로 추진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유럽연합(EU)이 제기한 한-EU 자유무역협정(FTA) 분쟁 해결 절차가 21일 본격 시작했다. 한국의 ILO 핵심협약 비준 지연이 한-EU 무역분쟁으로 번진 데 따른 것이다. 또한 한-EU 협의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를 중심으로 진행 중인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사회적 대화의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고용노동부는 이날 “정부 대표단과 EU 집행위원회 대표단은 오늘 오후 서울 코트야드 메리어트 호텔에서 한-EU 정부 간 협의를 개최했다”고 알렸다. 한-EU 정부 간 협의에는 김대환 노동부 국제정책관을 수석대표로 하는 정부 대표단과 마들린 튀닝가 EU 집행위 통상과장을 비롯한 EU 대표단 등 20여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EU는 작년 12월 17일 한국이 한-EU FTA 협정의 ‘무역과 지속가능발전 장(章)’인 제13장 4조 3항 이행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며 정부 간 협의를 요청한 바 있다. 정부 간 협의는 무역과 지속발전가능 장의 분쟁 해결 절차의 첫 단계다. 무역과 지속가능발전 장은 지속가능한 무역관계 발전을 담보하기 위한 노동·환경 분야 기준에 관련한다. 특히 4조 3항은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국이 ILO 정식 회원국이 된 것은 1991년 12월이다. 그러나 핵심협약으로 분류되는 8개 가운데 4개에 아직 비준하지 않은 상태로, 이들 핵심협약은 결사의 자유에 관한 제87호와 제98호 협약, 강제노동 금지에 관한 제29호와 제105호 협약이다.
문재인 정부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국정과제로 내걸었다. 이에 따라 경사노위 산하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는 작년 7월 발족, ILO 핵심협약 비준과 국내 노동관계법 개정을 위한 사회적 대화를 시작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개선위원회가 해고자와 실업자의 노조 가입 허용을 포함한 공익위원 권고안을 발표하고 노·사간 입장차를 좁히는 논의를 이끌고 있다.
한-EU 정부 간 협의에서 김대환 국제정책관은 정부가 ILO 핵심협약의 조속한 비준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고 경사노위의 사회적 대화도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하엘 라이터러 주한 EU 대표부 대사는 “한국 정부가 (한-EU) FTA에 포함된 노동권에 관한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취한 조치가 충분하지 않다”며 “FTA 발효 8년째에 접어드는 이제는 진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한-EU FTA의 무역과 지속가능발전 장 분쟁 해결 절차는 정부 간 협의를 시작으로 추가 논의가 필요할 경우 무역과 지속가능발전 위원회를 소집한다. 만일 위원회에서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면 전문가 패널 소집, 전문가 패널 권고 등을 담은 보고서를 채택하게 된다. 전문가 패널 보고서가 채택되면 무역과 지속가능발전 위원회가 이행 사항을 점검한다. 권고 사항을 이행하지 않아도 특혜 관세 철폐와 금전적 배상 의무 등 경제 제재가 따르지는 않지만, EU가 이를 토대로 계속 압박을 강화하면 국가 위상 실추 등의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EU는 한-EU FTA에서 무역과 지속가능발전 장을 마련한 것을 시작으로 다른 나라와 체결한 FTA에도 무역과 지속가능발전 장을 포함한 바 있다. EU가 무역과 지속가능발전 장을 근거로 FTA 상대국을 대상으로 분쟁 해결 절차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U 집행위원회 대표단은 한-EU 정부간 협의에 이어 오는 22일에는 경사노위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와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등 주요 노·사단체와 간담회를 열어 한국의 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를 논의할 방침이다.
/이다원 인턴기자 dwlee618@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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