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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홍역





1752년 조선 왕실은 사도세자의 비인 혜경궁 홍씨가 원손(元孫·훗날 정조)을 얻자 크게 기뻐했다. 기쁨도 잠시, 홍역이 왕실을 휩쓸고 지나갔다. 사도세자의 친누나인 화협옹주가 홍역에 걸리자 사도세자 내외와 어린 원손은 급히 다른 곳으로 피했는데도 결국 홍역에 걸렸다. 사도세자 내외와 원손은 다행히 홍역에서 살아남았지만 화협옹주는 희생됐다. 왕실이 이 정도였으니 일반 백성은 오죽했으랴. 1707년 평안도에 홍역이 번져 사망자 수가 수천명에 달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에서 홍역은 옛날부터 몹시 어려운 일을 겪을 때 ‘홍역을 치렀다’라는 관용어구가 있을 정도로 무서운 병이었다. 천연두·콜레라와 함께 조선시대 3대 전염병 중 하나였다. 홍역은 발병할 때마다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고 1962년 백신접종이 시작된 뒤에야 움츠러들었다. 2006년 발병률이 인구 100만명당 0.52명 수준으로 내려가자 보건당국은 홍역 퇴치를 선언하기도 했다.

최근 대구·경북을 시작으로 홍역 환자가 잇따르더니 21일에는 서울에서도 환자가 발생하면서 홍역이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한때 퇴치됐던 홍역이 국내에서 또다시 발생한 것은 해외 유입 때문이다. 일본이나 유럽 등도 홍역 퇴치를 선언했지만 지난해 많은 환자가 발생했다. 일본만 해도 지난해 300명이 넘는 환자가 발생했고 유럽에서는 그해 상반기에만 5만명에 가까운 환자가 생겼다. 유럽에서 특히 발병이 많았던 것은 사람들이 예방접종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국의 한 의사가 1998년 홍역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논문을 발표했다가 거짓으로 밝혀졌지만 이때 상당수의 부모가 자녀에게 백신 접종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에 국내에서 발생한 환자가 주로 20~30대인 것은 면역도가 낮기 때문으로 보건당국은 분석한다. 예방접종은 두 차례 해야 하는데 1997년 이전에는 한 번만 해 이때 예방접종을 제대로 하지 않은 2030세대가 홍역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홍역이 느닷없이 번지고 있지만 크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사라진 감염병이 돌아왔지만 예방접종만 제대로 했다면 “홍역아 물렀거라”라고 호통쳐 보낼 일이다. /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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