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심사를 하루 앞둔 법원이 ‘딜레마’에 빠졌다. 납득할 만한 기각사유를 제시하지 못한 채 구속영장을 기각할 경우 엄청난 국민적 저항과 비난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구속영장을 발부하면 사법부 수장이 재판을 사적으로 이용했다는 것을 간접 인정하는 셈이어서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3일 오전 10시30분 321호 법정에서 양 전 대법원장의 영장실질심사를 연다. 구속영장을 기각할 경우 국민이 납득할 만한 기각사유를 제시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법원은 그동안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사건과 관련해 범죄의 중대성과 범죄를 저질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지를 따져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했다. 법원은 앞서 의혹 연루자 중 유일하게 구속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해서는 “범죄사실 중 상당한 부분에 대해 소명이 있어 구속의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반면 의혹의 또 다른 핵심축인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해서는 “범죄혐의 중 상당 부분에 관해 피의자의 관여 범위 및 그 정도 등 공모관계의 성립에 대하여 의문의 여지가 있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영장을 기각할 경우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 논리가 그대로 재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의 공모관계를 인정하기 힘들다거나,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범죄를 저질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없다는 식이다. 하지만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적시한 혐의내용을 감안하면 이런 식의 기각사유는 설득력을 얻기 어려워 보인다.
수사 초반 논란이 됐던 재판거래 문건 작성 지시 등이 직권남용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논란은 임 전 차장의 구속으로 사실상 마무리됐다. 또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과 달리 양 전 대법원장은 사법행정권 남용에 ‘직접’ 개입한 정황이 차고 넘친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김앤장 독대 문건’, ‘판사 블랙리스트 문건’, ‘이규진 수첩’ 등 검찰이 제시한 ‘직접개입’ 물증을 깰 만한 기각사유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상황에서 법원이 충분한 기각사유 없이 구속영장 기각을 강행하면 법조계에서는 물론 국민적 차원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비판이 일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구속영장을 발부하더라도 법원으로서는 여간 곤혹스러운 상황이 아니다. 전직 사법부 수장이 상고법원 도입 등 개인 치적을 위해 재판을 흥정거리로 사용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칫 회복 불가능한 사법불신 상태를 불러올 수 있다는 시선도 있다.
보수성향 법관들의 대대적인 반발로 걷잡을 수 없는 사법부 내홍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검찰수사에 사실상 협조한 김명수 대법원장에 대한 법원 내부의 비난 여론도 극심해질 수 있어 영장 발부 여부에 이목이 집중된다.
/윤서영 인턴기자 beatri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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