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앞에서 기습 시위를 벌인 김수억 금속노조 기아차 비정규직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가운데 구속영장 청구서에 노동계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내용이 담겨 논란이다. 영장을 신청한 경찰은 “사회적 분위기를 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 지회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지난 21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렸다. 김 지회장은 앞서 이달 18일 오후 청와대 앞에서 불법 집회를 벌인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현행 집시법상 청와대 앞에서 옥외집회와 시위를 할 수 없다. 경찰은 지난해 9월 22일부터 보름간 이어진 고용노동청 점거, 지난해 11월 12일부터 4박 5일간 청와대와 국회 앞에서의 집회로 집시법을 위반한 사안 등 총 6건을 합쳐 검찰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22일 ‘비정규직 이제 그만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이하 공동투쟁)에 따르면 김 지회장에 대한 검찰의 영장청구서에는 민주노총에 대한 정치권의 비판적인 발언들이 대거 들어 있다. 검찰은 “민주노총과 전교조는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민주노총은 대한민국의 법치와 경제를 망치는 암적 존재”(바른미래당 하태경 최고위원), “민주노총이기 때문에 손을 못 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등의 발언을 인용했다. 공동투쟁은 “검찰이 제출한 영장청구서를 보면, 김 지회장에 대한 영장청구가 단순한 경찰과 검찰의 과잉반응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며 “문재인 정부의 반인권 반노동 기조에 공안검찰이 날개를 편 것”이라고 비판했다.
금속노조 법률원 탁선호 변호사는 “검경은 판사에게 예단을 주기 위해 사건의 본질과 관계가 없는 내용을 장황하게 영장청구서에 설명하고 있다”며 “공안 기관들이 공안정국 조성을 해서 민주노총을 탄압하는 옛 방식에 대해 향수와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 사례”라고 짚었다. 이어 “특히 영장청구서에 2015년 민중총궐기 대회 당시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조계사로 잠적한 사례까지 언급하며 김 지회장이 도주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완전히 별개의 사안을 근거로 김 지회장을 구속수사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검사는 사법경찰관이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경우 범죄혐의와 구속 필요 사유가 충분히 소명됐다고 판단되면 경찰 수사와 경찰의 의견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사법경찰관이 작성한 신청서의 문구를 거의 수정하지 않고 신청서를 그대로 청구서에 편철해 청구한다”고 해명했다. 이어 “이번 경우에도 경찰 신청서에 정치인의 일부 발언을 인용한 부분이 있었으나 그대로 청구한 것일 뿐이며 특정 단체에 대한 선입관을 가진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영장을 신청한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이번 사건과 관련한 사회적 분위기를 보충 설명하기 위해 정치권 인사들의 발언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구속 필요성을 이야기한 것일 뿐 민주노총에 대한 경찰의 입장을 담은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임민성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전날 김 지회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에서 영장 신청을 기각했다. 임 부장판사는 “피의자가 기초적 사실관계를 인정하며 증거자료가 확보된 점, 수사에 임하는 태도나 주거 및 가족관계 등을 종합해 보면 현 단계에서 구속 사유와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박원희 인턴기자 whatamove@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