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부동산세·재산세를 매기는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 인상의 범위와 속도를 놓고 여당과 청와대가 다른 말을 했다. 내년 총선에 누구보다 민감한 여당은 “서민·중산층이 사는 지역은 점진적으로 올려야 한다”고 한 반면 부동산시장 안정이 최우선인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은 집값이 오른 만큼 전반적으로 올려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내부 회의에서 좀처럼 각을 세우지 않고 정책 조정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는 김 실장 취임 후 당청 사이에서 공개적으로 결이 다른 주장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양측의 시각차는 22일 국회에서 열린 당정청 회의에서 드러났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공시가격 현실화는 집값 급등지역이나 시세와 공시가격 사이에 격차가 큰 초고가 주택을 중심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서민과 중산층이 거주하는 중저가 주택은 급격하게 부담이 늘지 않도록 점진적으로 현실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관계부처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상반기 중 대책을 마련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주문했다. 공시가의 급격한 인상은 최근 몇 년간 집값이 껑충 뛴 지역이나 초고가 단독주택에 한정하고 중산층이 사는 곳은 완만하게 올려야 한다는 의미다. 반면 김 실장은 지난 20일 춘추관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공시가 인상으로 세금폭탄 우려가 나오는데 최소 집값이 오른 만큼은 (공시가격 인상이) 반영돼야 한다는 게 국민 공감대”라며 “기본적으로 집값이 오른 만큼 공시가를 현실화하는 데 주안점을 두겠다”고 말했다. 서민·중산층 거주 지역을 구분하기보다 집값이 오른 지역이면 그만큼은 공평하게 공시가가 올라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돼 홍 원내대표와 온도 차이를 보였다.
김 실장은 22일 당정청 회의에서 홍 원내대표 바로 다음으로 마이크를 잡았는데 공시가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다만 양측은 초고가 단독주택의 경우 급격히 올릴 필요에 대해 같은 목소리를 냈다. 홍 원내대표는 “초고가 단독주택은 공시가 현실화율이 현격히 떨어지므로 형평성 차원에서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김 실장도 “아파트에 비해 현실화율이 현격히 떨어져 보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의 입장 차는 내년 총선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당 입장에서는 표심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오는 25일 단독주택 공시가가 고시되고 4월 말 아파트 가격이 나오면 바로 국민들이 보유한 주택의 재산세·종부세를 얼마인지 계산해볼 수 있다. 이어 7월과 9월 재산세를 내고 12월에 종부세를 내는데 이때 내야 할 세금이 껑충 뛰면 바로 4개월 뒤 총선에서 여당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특히 소득이 없는 은퇴자 등 노년 계층은 ‘집 한 채 가진 것이 죄냐’며 강하게 반발할 수 있다.
반면 김 실장은 현실론을 피력한 것으로 분석된다. 홍 원내대표가 서민과 중산층은 공시가의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어디를 중산층 주거지, 어디를 부유층 거주지로 나눌지 애매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가장 민감한 세금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차라리 통일된 기준으로 집값이 오른 분만큼 공시가를 올리는 게 논란도 방지할 수 있다.
공시가는 건강보험료·기초연금 등 60여개 행정 목적에 활용되는 등 한 번 조정하면 파장이 커 당정청 간 논쟁도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홍 원내대표가 태스크포스(TF) 구성을 공개 제안해 여기에서 집중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건강보험료의 경우 지역가입자는 공시가와 보험료가 연동돼 공시가가 올라가면 보험료 부담도 늘어난다. 만 65세 이상 노인의 소득 상위 70%에 지급되는 기초연금 역시 공시가가 급등하면 보유자산 가치가 뛰어 수급 대상에서 빠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서민 주거안정에 불똥이 튈 수도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공시가격이 올라가면 주택 보유자의 세가 올라가 세입자에게 세 부담을 전가하거나 조세저항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국토교통부가 오는 25일 발표할 단독주택 공시가는 현재 정부 계획대로라면 대폭 오를 것으로 보인다. 서울만 놓고 보면 표준주택가격 상승률이 20.7%로 전년(7.92%)보다 두 배 이상 오를 것으로 점쳐진다. 이렇게 될 경우 보유세 부담이 급격하게 늘어나 세 부담 상한(재산세 105~130%, 종부세 150%)을 적용받는 납세자가 급증할 것으로 부동산 업계는 보고 있다. 공시가격 9억원 이하 1주택자는 종부세 납세 대상이 아니지만 올해는 공시가격이 크게 올라 새로 종부세를 내야 할 사람도 속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납부할 종부세액 자체는 많지 않더라도 납세자 입장에서는 예전에 내지 않던 세금을 내게 되면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게 세무 업계의 설명이다.
/이태규·이완기기자 classic@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