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을 진 상태에서 부모에게 유증(유언으로 재산을 증여받는 행위) 받은 재산을 포기하더라도 채권자의 권리를 침해한 게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유증 포기가 사해행위(채무자가 고의로 재산을 감소시켜 채권자의 강제집행을 어렵게 만드는 것) 취소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장모씨가 채무자 조모씨와 그의 형제들을 상대로 낸 사해행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23일 밝혔다.
장씨는 조씨가 2006년에 빌린 2억원을 갚지 않자 원금과 연 25% 지연이자를 갚으라며 소송을 냈다. 소송이 진행되던 중 조씨의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조씨에게 아버지 소유의 아파트가 유증됐다. 하지만 조씨는 유증을 포기하고 이 아파트를 형제들과 균등하게 나눠 상속받자 이것이 사해행위에 해당한다며 추가 소송을 냈다. 조씨가 유증대로 아파트를 상속받으면 아파트 전체를 대상으로 채권 강제집행을 할 수 있지만 이를 포기하는 바람에 아파트 상속 지분만 강제집행 대상이 됐다는 주장이었다. 민법은 채무자가 고의로 재산을 감소시켜 채권자의 강제집행을 어렵게 만드는 것을 사해행위로 보고 채권자가 소송으로 이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1·2심은 “수증자의 자유로운 유증 포기 의사는 수증자가 채무 초과인 경우에도 존중돼야 한다”며 유증 포기가 사해행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신 조씨에게 빌린 2억원과 지연이자 25%를 장씨에게 갚으라고 선고했다. 대법원도 하급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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