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의 화약고’ 베네수엘라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야권과 미국을 위시한 우파 국제사회의 거센 압박으로 격랑에 휘말리고 있다. 23일(현지시간) 마두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수도 카라카스를 뒤덮은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필두로 한 국제사회가 마두로에 대적하는 젊은 야권 지도자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합법적인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한다고 밝히면서 베네수엘라 정국은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초유의 경제난과 정정불안으로 촉발된 이번 시위가 정권교체의 기폭제가 될지 주목되는 가운데 마두로 대통령과 베네수엘라의 명운은 마두로 정권의 기반인 군부의 향후 행보에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우파 야권과 지지자 수만명은 이날 카라카스에서 마두로 대통령의 퇴진과 재선거를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이날은 지난 1958년 베네수엘라의 마르코스 페레스 히메네스 독재정권이 대중봉기로 무너진 날이자 마두로 대통령이 재취임한 지 겨우 13일을 맞은 날이다.
마두로 퇴진운동의 선봉에 선 35세의 과이도 국회의장은 자신을 임시 대통령으로 선언하고 시위대를 이끌었다. 마두로 대통령은 지난해 5월 대선에서 68%의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지만 야권은 유력 후보들이 가택연금과 수감 등으로 선거에 나설 수 없는 상황에서 치러진 부정선거라며 마두로의 퇴진을 요구해왔다. 마두로를 새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 미주 우파국가들을 비롯한 국제사회도 야권의 정권퇴진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과이도 의장을 베네수엘라의 합법적인 대통령으로 공식 인정한다”고 밝혔으며 유럽연합(EU)도 재선거를 촉구했다.
베네수엘라에서 임시 대통령을 자처한 야권 인사가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게 된 배경은 극심한 경제난과 좌파 독재정권이 초래한 정치적 혼란이다. 2015년 국제유가 급락으로 직격탄을 맞은 베네수엘라 경제는 우고 차베스 전 정권부터 시작된 좌파 포퓰리즘(대중 인기영합주의) 정책으로 더욱 멍들었고 결정적으로 미국 등이 마두로 정권의 인권침해 등을 이유로 경제 제재를 가하면서 급격하게 고꾸라졌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해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은 1,000만%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며 경제난을 피해 이웃 국가로 탈출한 국민은 이미 300만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마두로 대통령은 오히려 석유 이권을 노린 미국이 중남미 우파정권과 함께 정부를 전복시키려 한다고 비난하며 정권 퇴진을 외치는 야당 인사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있다. 이날도 마두로 대통령은 수천명의 지지자들을 향한 연설에서 “헌법에 따른 대통령으로서 제국주의 미 정부와 정치·외교 관계를 끊기로 결정했다”며 미국 외교관들에게 72시간 내 출국을 명령했다.
마두로 대통령이 이처럼 강하게 나오는 것은 정권 기반인 군부의 지지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날 군은 과이도 의장의 임시 대통령 선언을 거부하며 반정부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이 때문에 이번 정권퇴진운동의 성공 여부 역시 결국 군의 움직임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군 수뇌부는 여전히 마두로 대통령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있지만 이미 일부 반발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게다가 미 정부가 공개적으로 베네수엘라에 대한 개입을 선언하면 군의 결속이 무너질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실제 트럼프 정부는 지난해 9월 베네수엘라 군 간부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쿠데타 계획을 논의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또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이르면 이번주 중 석유 등 에너지 부문에 추가 제재를 내릴 가능성이 있다고 밝힌 만큼 미국이 주 수입원인 석유 수출에 제재를 가할 경우 마두로 정권 퇴진이 앞당겨질 수도 있다.
/박민주기자 parkmj@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