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청와대에서 열린 공정경제추진전략회의에서 “대기업과 대주주의 탈법에 대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행사해 반드시 그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다음날 대전을 방문해서는 기업을 향해 “정부는 간섭도 규제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인이라면 문 대통령의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 발언을 정부의 간섭과 규제 신호로 받아들였을 텐데 하루 만에 간섭과 규제를 하지 않겠다니 어떤 게 진심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당근과 채찍을 같이 주는 이 모순된 방향 제시는 지난해 말부터 시작됐다. 소득주도 성장 논란 끝에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정책실장이 바뀌자 기존 경제정책의 기조가 변할 수 있다는 전망이 고개를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부총리 임명식 때는 “투자 애로와 해법을 찾아달라”고 주문하고 고용노동부 업무보고 때는 “최저임금 인상의 속도 조절이 필요한지 조사하라”고 지시하면서 기대만 잔뜩 키웠다. 그랬던 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기존 경제정책 고수를 못 박은 데 이어 더 나아가 국회에 기업들이 그토록 반대하던 상법 개정안 통과를 주문하니 기업인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알 수가 없다.
한 나라 대통령의 발언이 이렇게 냉온탕을 왔다 갔다 하니 청와대에 모인 기업인 130명에게 “전담지원반을 가동해 투자를 돕겠다”고 약속해도 믿기 힘들다. “일자리도 결국 기업 투자에서 나온다”며 아무리 민간의 역할을 강조해도 그냥 말치레로 들릴 뿐이다.
지금 우리 경제는 전반적으로 위축돼 있다. 내수는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그나마 힘겹게 버텨온 수출은 이제 하강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거의 유일한 성장엔진인 반도체 산업은 이미 지난 분기에 한풀 꺾였고 뒤를 이을 미래 산업은 아직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이 진심으로 경제를 살리고 싶다면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기업들이 마음 놓고 투자할 여건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국내외 경제여건이 워낙 불확실한 지금 대통령이 100% 기업우대 정책을 펴도 모자랄 판에 여기서는 이 말, 저기서는 저 말을 하는 식으로는 기업 투자를 이끌어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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