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사법부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사실상 최초 고발한 이탄희(41)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판사가 최근 법원에 사표를 제출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 판사는 29일 법원 내부통신망 코트넷을 통해 올 1월초 소속 법원에 사직서를 제출한 사실을 공개했다. 이 판사는 “1월 초에 이미 사직서를 제출하고도 마음을 앓았다”며 “회복과 재충전이 필요해 이번 정기인사 때 내려놓자고 마음먹은 지는 오래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지난 시절 법원행정처를 중심으로 벌어진 헌법에 반하는 행위들은 건전한 법관사회의 가치와 양식에 대한 배신이었다”며 “법관이 추종해야 할 것은 사적인 관계나 조직의 이익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공적인 가치이고 이 가치에 대한 충심이 공직자로서의 명예”라고 강조했다.
이 판사는 “처음부터 정의로운 판사를 꿈꿨던 것은 아니고 어린 시절 나만의 지기 싫은 마음으로 판사가 된 것도 같다”며 “단 하나의 내 직업에 걸맞은 소명의식을 가진 판사, 이상이 있는 판사이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다만 좋은 선택을 한 뒤에는 다시 그 선택을 지켜내는 길고 고단한 과정이 뒤따른다는 것을,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 끝없는 노력과 희생을 요한다는 것을 그때는 다 알지 못했다”며 “드러난 결과는 씁쓸하지만 과정을 만든 한 분 한 분은 모두 존경하고 고맙다”고 술회했다.
이 판사는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 2017년 2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기획2심의관으로 발령됐다. 국제인권법연구회 총무였던 이 판사는 2015~2016년 연구회 회장이었던 이규진 당시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으로부터 연구회의 학술대회를 견제하라는 지시를 받고 반발했다. 법원행정처로 인사 발령이 났던 이 판사는 사직서까지 제출한 끝에 원 소속인 수원지법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이후 이 판사가 “행정처 컴퓨터에 국제인권법연구회 판사 등의 뒷조사 파일이 있다”는 말을 들은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졌다. 법관 블랙리스트는 3차례 법원 자체 조사 끝에 ‘재판거래’ 의혹으로 번졌고 지난 24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으로 귀결됐다.
2008년 수원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판사생활을 시작한 이 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판사와 광주고법 판사 등을 역임하다 지난해 헌법재판소로 파견돼 근무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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