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포럼, 일명 ‘다보스포럼’이 지난주 폐막했다. 올해 다보스포럼은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포함한 주요국 정상들의 불참으로 빛이 바래기는 했지만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의 추진: 인간을 중심에 놓다(Leading through the 4th Industrial Revolution: Putting People at the Center)’라는 백서의 발간은 그중 하나다. 결론은 이렇다. ‘4차 산업혁명의 가장 중요한 자원은 사람이다. 4차 산업혁명의 진정한 잠재력을 여는 것은 끊임없이 인간의 잠재력을 인식하고 사람을 중심에 두는 것이다.’ 직전 두 차례의 다보스포럼이 급격한 변혁의 시대에 대응하는 기업에 방점을 찍은 것과 비교하면 전혀 다른 결론이다.
다보스포럼의 태도변화 근저에는 위기감이 깔려 있는 듯 보인다. 포럼에 참석했던 뮈리엘 페니코 프랑스 노동부 장관은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4차 산업혁명의 희생양이 될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발 일자리 대기근에 대한 우려다. 몰랐던 바가 아니다. 이미 3년 전 다보스포럼은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710만명이나 줄어들 것이라는 경고를 내놓았다. 한국은행도 최근 온라인 거래의 확대로 2014년 이후 도소매 취업자가 연평균 1만6,000명 감소한 것으로 추산했다. 기술 발전에 따른 일자리 소멸이 시나브로 현실로 다가오고 있음이다.
새로운 기회가 생길 것이라는 기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희망은 기존의 화이트 또는 블루가 아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한 새로운 컬러의 노동자 몫이다. 나머지는 일자리를 잃고 떠도는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 투자는 사람이 아닌 기계로 흘러가고 부는 인공지능(AI)과 로봇으로 무장한 기업에 더욱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현실화한다면 양극화와 이로 인한 사회불안의 심화는 피할 수 없는 결과가 된다. 계층 간 갈등과 반목만 횡행하는 사회에서, 노사 간 투쟁만 존재하는 경제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프랑스의 노란 조끼는 이에 대한 경고일지 모른다. 다보스가 자본주의 대신 사람을 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보스포럼이 내놓은 대안은 ‘사람에 대한 투자와 협업’이다.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기계와 사람이 공존할 수 있는 기술적 대안을 마련해보자는 것이다. 노동자와 국민에 대한 재교육, 노동자 재활 프로그램과 같은 사람에 대한 투자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실현하게 하는 핵심요소로 떠올랐음은 물론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1840년대 중후반 현대 역사상 최악의 대기근이 아일랜드를 덮쳤다. 감자가 썩으면서 수백만명이 굶어 죽었고 거리에는 시체로 넘쳐났다. 미국 역사학자 존 켈리의 ‘무덤이 걸어 다녔다’는 표현은 너무도 정확했다. 아일랜드 대기근은 그러나 원산지 아메리카 원주민으로부터 감자 재배 노하우만 배웠어도 과학자들이 감자 썩는 이유를 제대로 알려주기만 했어도 피할 수 있는 재앙이었다. 앞으로 닥칠지 모를 일자리 대기근도 다르지 않다. 정부는 나서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술진보의 주역은 정부가 아닌 기업인 탓이다. 기업이 변화하는 세상에 노동자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투자한다면 지속 가능한 성장도, 노사 화합도 어렵지 않다. 기업이 외면한다면 미래 사회의 거리는 삶의 의미를 잃은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줄지도 모른다. 그때 가서 사회 갈등과 반기업 정서를 탓해봐야 아무 소용없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저서 ‘기업의 개념’에서 ‘사람은 비용이 아니라 조직의 가장 가치 있는 자원’이라고 강조했다. 드러커의 그 ‘사람’이 70여년이 지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사람이 설 곳은 어디냐고. 세계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이미 행동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도 뭔가 찾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sk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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