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드십 코드란 기관투자가들을 위한 ‘의결권 행사 지침’이다. 서양에서 큰 저택의 주인 대신 집안일을 맡아 보는 집사(steward·스튜어드)처럼 기관도 고객의 재산을 선량하게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16년 12월 도입됐는데 최근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여부로 큰 논란이 되고 있다.
첫째, 의사결정 권한의 위임범위 문제다. 국민연금 가입자는 2,000만명이 넘는다. 상호판단이 다르고 이해관계도 매우 복잡할 수밖에 없다. 집사인 연금공단이 주인인 2,000만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기는 어렵다. 국민들은 노후를 위해 안정적인 기금운용과 증식을 위탁했을 뿐 시장에 개입할 것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생활 안정과 복지 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국민연금법 제1조’의 취지를 모른다는 것일까.
둘째,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한다’는 헌법 정신과의 상충 가능성 부분이다. 정부가 연금운용이라는 지렛대를 통해 기업 활동의 핵심적인 사항을 결정하게 됨으로써 ‘연금사회주의’로 전환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들이다. 백기사 제도가 인정되지 않는 우리 경제계 현실에서 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실행 여부와 관계없이 기업 활동의 자율과 창의를 크게 침해할 것으로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셋째, 시장질서 교란 우려다.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 규모는 지난해 3·4분기 기준 123조9,000억원으로 시가총액의 7%에 이르며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기업이 297개에 달할 정도로 엄청나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해당 기업뿐만 아니라 관련 산업과 시장 전체에 연쇄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의 부작용에 대해 고민과 대안이 있는지 아니면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아닌 새로운 경제 모형을 실험하고 있는지 묻고 있다.
넷째, 본말전도에 대한 부분이다. 지난해 1~10월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수익률은 기록적이다. -16.57%. 국내주식 운용기금의 규모가 123조9,000억원임을 고려할 때 국민의 노후자금 20조5,000억원이 공중분해된 것이다. 청년들의 꿈을 앗아간 정권이 이제 국민들의 노후까지 파탄을 내려 하고 있음에 분노하는 국민이 많다. 국민의 노후자금을 비자금 삼아 관치경영하려는 젯밥에 관심 끄고 우선 경제 파탄에서 국민부터 구출해야 하지 않겠나.
다섯째, ‘정권코드’로의 변질 우려다. 공단 이사장(김성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기금운용위원장(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도 수탁자책임위원(복지부 장관 위촉)도 모두 대통령의 측근이다. 공정한 의사결정을 담보할 수 있을까. 대통령 입맛에 따라 흔들리지 않을까. 두렵다. “지분 한 푼 없는 정부가 기업은행을 압박해 KT&G 사장 인사에 개입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운영위 현안질의에 대해 임종석 전 비서실장은 “기획재정부가 인사에 개입할 수 있는 감시 장치를 만들려고 한 것은 매우 가상한 일…오히려 칭찬받을 일”이라며 후안무치한 답변을 한 바 있다. 기업에 대한 인사개입은 물론 경영권까지 장악하려는 노골적 야욕이 아닌가 의심하는 국민이 많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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