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밥 먹는 게 창피한 일로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다. 혼밥 레벨이라는 게 돌아다닐 정도였는데 요즘은 일부러 혼밥·혼술을 하러 식당과 술집을 다니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특히 혼밥·혼술이 자연스러운 일본 여행객이 늘어나면서 이런 내용을 다룬 드라마도 인기다. 심지어 드라마를 보고 일본 현지로 날아가 성지순례까지 나서는 싱글족이 생겨날 정도다. 올해 설 연휴에 이런 드라마를 보고 올봄에는 일본으로 날아가보는 것은 어떨까.
혼밥을 대표하는 일본 드라마는 누가 뭐라 해도 ‘고독한 미식가(孤獨のグルメ)’를 빼놓을 수 없다. 중년의 영업사원인 이노가시라 고로(마쓰시케 유타카 분)가 외근을 하다 허기를 느껴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 게 주된 내용이다. 드라마지만 실제 영업 중인 식당을 찾아 촬영해 맛집 탐방 프로그램 같은 느낌을 주는 게 특징이다. 주로 뒷골목의 후미진 곳, 시장 구석에 위치한 작은 식당이 나오고 때로는 허름한 선술집, 심지어 노점도 고로상에게는 맛집이 된다.
지난 2012년 첫 방영을 시작해 벌써 시즌 7까지 방영됐다. 주로 도쿄의 식당들이 소개되지만 출장을 다니는 콘셉트로 홋카이도·오사카·교토·나고야 등의 일본 주요 도시는 물론 타이베이·서울 등 해외 식당까지 소개되기도 했다. 지난해 한국 출장을 온 고로상은 서울에서 돼지갈비를 먹고 전주에서 비빔밥을 먹기도 했다. 중국판으로도 제작됐는데 타이베이 식당들이 소개됐다.
혼밥하는 중년 남성이 있다면 프로 혼술러인 직장 여성 와카코도 있다. ‘와카코와 술(ワカコ酒)’은 무라사키 와카코(다케다 리나 분)가 퇴근 후 혼자 술집을 찾는 내용을 담았다. 구성은 고독한 미식가와 비슷한데 다른 점이라면 술과 함께 안주를 곁들인다는 것. 생맥주·하이볼 등 도수가 낮은 술로 시작해 니혼슈(사케)나 소주 등 도수가 높은 술까지 다양한 종류를 마시며 그날 마신 술에 대해 자세히 소개한다.
2015년 시즌 1이 시작돼 올해 시즌 4가 방영되고 있는 와카코와 술은 고독한 미식가와 공통점이 많다.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해외에서 리메이크했다는 것. 국내에서 2015년 11월 방영된 ‘나에게 건배’가 이 드라마의 한국 버전이다.
낮술을 즐기는 직장인의 일탈을 보여주는 ‘낮의 목욕탕과 술(晝のセント酒)’이라는 일드도 있다. 광고회사 영업사원인 우쓰미 다카유키(도쓰키 시게유키 분)가 대낮에 사실상 ‘땡땡이’를 치고 목욕을 즐긴 후 낮술을 마시는 내용이다. 고독한 미식가 원작의 스토리를 담당한 구스미 마사유키의 에세이를 원작으로 해 흐름이 비슷하다. 드라마 제작진도 같고 영업사원이라는 콘셉트도 동일하다. 혼술 전에 목욕탕신에서 적나라한 남성들의 몸매가 드러나 19세 관람가라는 점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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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서민적인 식당이 나오는 다른 작품들과 달리 ‘여자 구애의 밥(女くどき飯)’은 고급 레스토랑이 주된 포인트다. 여주인공인 간바야시 메구미(간지야 시호리 분)는 프리랜서 작가다. 독자에게 응모받은 식당에서 남성들과 함께 식사하며 칼럼을 연재한다. 식사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클로즈업되고 주인공의 관점에서 맛을 표현하는 것은 여느 혼밥 드라마와 동일하다. 차이점이라면 매회 각기 다른 남성들과의 데이트가 추가된다는 것인데 드라마를 보고 있자면 화면 속 남성과 데이트를 하는 기분까지 더해진다. 메구미 역시 만나는 남성마다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가 된다. 시즌 2까지 나왔다.
식사를 했으니 디저트도 필요하다. 다양한 음식, 요리 관련 드라마가 있는 일본이다 보니 디저트만 집중 공략하는 프로그램도 적지 않다. 대표작으로 ‘세일즈맨 간타로의 달콤한 비밀(さぼリマン甘太朗)’이 있다. TV도쿄와 넷플릭스가 함께 만든 작품으로 주인공 아메타니 간타로(오노에 마쓰야 분)는 근무시간에 디저트 탐방을 위해 내근직인 프로그래머에서 출판사 영업직으로 이직한다. 외근을 하며 도쿄의 디저트 맛집에서 디저트를 먹고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게 주된 내용. 극도의 클로즈업과 슬로모션을 자주 활용하는데 디저트를 맛본 간타로의 맛 표현이 압권이다. 녹차나 시럽 같은 재료가 온몸에 뿌려지기도 하고 본인 스스로가 콩·밤·멜론 등으로 변신한다. 눈을 까뒤집고 하는 망상까지 ‘병맛’ 드라마가 따로 없는데 이게 드라마의 매력 포인트다. 매회 달달한 디저트 하나에만 집중하다 보니 아쉽기도 한데 어느새 입가에는 침이 고인다.
이쯤 되면 직접 요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정성을 다해 요리첩(みをつくし料理帖)’ ‘하나씨의 간단요리 (花のズボラ飯)’ 같은 작품을 보면 쉽게 가능하다. 정성을 다해 요리첩은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주인공이 최고의 요리사가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매회 음식 이야기를 에피소드로 하며 마지막에 주인공이 직접 레시피를 알려준다. 재료부터 만드는 과정을 자세히 보여주니 요리 못 하는 ‘똥손’도 도전해볼 만하다. 하나씨의 간단 요리는 싱글족에게 보다 어울릴 법한 초간단 요리를 소개한다. 역시 드라마 말미에 간단한 덮밥류, 달걀말이 같은 요리법이 소개되니 직접 도전해보자.
보는 것으로만 그칠 수 없어 현지로 떠나는 여행객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주로 도쿄의 식당·술집 위주인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인증샷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홈페이지에 가면 실제 운영하고 있는 점포도 잘 안내돼 있어 찾아가는 것도 어렵지 않다.
여행상품도 등장했을 정도다. 하나투어가 2017년 고독한 미식가에 나오는 도쿄 맛집 투어를 진행한 적이 있고 최근 여행용품 쇼핑몰 트래블메이트도 관련 투어 상품을 내놓았다. 올봄 도쿄에서 고로상이 먹었던 와사비 갈비나 와카코양이 마셨던 고구마 소주를 마셔보자.
/김광수기자 br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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