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여권 실세인 김경수 경남지사가 법정 구속되면서 여당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에 대한 보복”이라고 법원을 맹공격하자 김명수 대법원장이 “법관 개인에 대한 도를 넘은 공격은 적절하지 않다”며 침묵을 깼다. 하지만 김 대법원장의 어정쩡한 행보와 정쟁 소용돌이에 법원 안팎의 갈등은 점점 극심해지는 분위기다.
김 대법원장은 1일 오전9시께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로 출근하는 길에 취재진을 만나 “(김 지사 1심 재판에 대한 정치권의 불복 목소리가) 도를 넘거나 법관 개인에 대한 공격으로 나아가는 것은 법률상 보장된 재판 독립의 원칙이나 법치주의 원리에 비춰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판결의 내용이나 결과에 관해 국민들의 비판은 허용돼야 하고 바람직할 수도 있다”고 전제하며 “헌법이나 법률에 의하면 판결 결과에 불복하는 사람은 구체적인 내용을 들어서 불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 지사가 항소 등 법적 절차에 따라 1심 결과를 다퉈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김 대법원장이 직접 대응에 나섰지만 법원 내 갈등은 더욱 극심해지고 있다. 실제로 전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이 참여한 ‘양승태 사법농단 공동대응 시국회의’가 탄핵소추 대상으로 지목한 윤성원 신임 인천지방법원장은 이날 사표를 냈다. 윤 법원장은 양승태 사법부 시절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장으로 근무하면서 통합진보당 태스크포스(TF) 등 중요 회의에서 지휘부 역할을 맡은 것으로 지목됐다. 지난달 28일 김 대법원장이 인천지방법원장에 임명한 지 고작 나흘 만이다.
또 김 지사를 구속시킨 성창호 부장판사는 이날 서울중앙지법에서 서울동부지법으로 발령이 났다. ‘사법농단’ 연루 의혹을 받는 정다주·문성호·나상훈 판사도 전보 발령됐다. 윤 법원장뿐 아니라 순식간에 온 조직이 ‘적폐’로 내몰린 법원은 대체로 말을 아끼는 분위기 속에 여당과 진보단체의 맹공에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법원이 총알받이가 된 상황에서 눈치만 보다가 뒤늦게 입을 뗀 김 대법원장에 대한 비토도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모양새다.
김 지사 구속에 대한 갈등 양상은 법원 밖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보수 성향의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모임’은 이날 성명을 내고 “만약 막무가내로 탄핵을 추진한다면 이는 국민 분열을 자초하는 폭거로서 헌법질서에 위배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도 전날 논평을 통해 “법원의 판결은 존중돼야 하며 판결 불복은 소송법에 따라 항소심에서 논리와 증거로 다퉈야 한다는 게 법치국가의 당연한 원칙”이라며 “과거 근무경력을 이유로 법관을 비난하는 것은 사법부 독립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민변 등은 지난달 31일 김 지사를 법정 구속시킨 성 부장판사까지 법관 탄핵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