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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문화재 근처라고 수소충전소 못들어선다니

지난달 규제 샌드박스 시행을 위한 관련법이 국회를 통과한 후 1호 사업으로 관심을 끌었던 서울 도심 수소충전소 설립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7일자 서울경제신문에 따르면 현대자동차가 규제 샌드박스 대상으로 신청한 서울 5곳의 수소충전소 가운데 현대 계동사옥 인근 등 2곳이 불가 답변을 받았다. 근처에 문화재가 있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지정문화재 인근 500m 안에서 건설공사를 하려면 해당 사업계획이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해야 한다. 현대차는 아직 규제 특례 여부가 확정되지 않아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정부에 제출하지 않은 상태지만 사실상 허가가 어렵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정부는 2040년까지 전국에 수소충전소 1,200개소를 짓기로 했고 이 가운데 상당수는 서울에 들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서울의 웬만한 곳에는 수소충전소를 지을 수 없다. 서울에는 328개의 지정문화재가 있고 이의 절반가량은 사대문 안에 밀집해 있다. 문화재 인근 500m 안이라는 잣대를 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문화재 근처가 아니어도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학교 인근 200m 안이라면 교육환경보호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이런 식이면 규제 샌드박스 시행 취지가 무색해진다.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출시될 때 일정 기간 기존의 규제를 면제·유예해주자는 것이 당초 취지지만 실제로는 기존 규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오히려 기존 규제는 둔 채 샌드박스라는 규제만 추가한 꼴이 아닌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프랑스에 가서 본 수소충전소는 에펠탑이 한눈에 보이는 파리 시내 한복판에 있었다. 우리도 프랑스처럼 낡은 규제를 풀어 기업들이 그동안 책상 속에 넣어뒀던 혁신 아이디어를 사업화하기 위해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도입했는데 시작부터 차질을 빚고 있다. 이왕 규제를 풀겠다고 했으면 확 풀어야지 여전히 이 심사, 저 심사를 거치도록 한다면 하지 않으니만 못하다. 규제 샌드박스의 근본적인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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